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오른쪽에 "표암 평(豹菴評)"으로 강세황이 평문을 써 넣었고, 왼쪽에 "소군출새(昭君出塞) 담졸(澹拙)"로 제목과 서명이 있는 담졸 강희언의 기마미인도다. '소군'은 왕소군(王昭君)으로 기원전 1세기 경 중국 한나라 원제 때 궁녀이고, '출새'는 고향을 떠나 멀리 변방으로 간다는 말이다.
화사하게 단장하고 비파를 멘 아름다운 여성이 화려하게 장식한 말을 타고 길을 나섰다. 말도 사람도 뒤를 돌아보며 내키지 않은 모양새다. 왕소군의 이름은 왕장(王嬙)이다. '한서' '원제기(元帝紀)'에 기원전 33년 변방 흉노족과의 평화를 위해 원제가 호한야선우에게 하사하여 왕비로 삼게 했다고 나온다.
'후한서' '남흉노열전'에는 왕소군 이야기가 좀 더 자세하다. 호한야선우가 한나라로 들어와서 조회하자 황제가 궁녀 5명을 하사하라고 했는데 입궁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황제를 뵙지 못해 슬픔과 원망이 쌓여있던 소군이 오랑캐 땅으로 가기를 자원했다. 호한야가 떠날 때 비로소 소군을 본 원제와 좌우의 신하들은 "광명한궁(光明漢宮)", 곧 궁궐을 환하게 할 정도로 빛나는 미모와 우아한 자태에 깜짝 놀랐다. 원제는 보내고 싶지 않았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한나라 때 이야기를 기록한 '서경잡기(西京雜記)'의 왕소군 이야기는 훨씬 드라마틱하다. 원제는 후궁이 워낙 많아 일일이 불러서 볼 수 없었으므로 그림으로 그리게 해서 화첩으로 미모를 확인한 후 불러서 총애했다. 그러자 궁녀들은 예쁘게 그려달라고 화가에게 뇌물을 주었는데 많으면 5만 전이었고 적어도 3만 전 이하는 없었다. 그러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고 황제의 눈에 띄지 못했다. 왕소군을 보고 나서야 전말을 알게 된 황제는 뇌물 받은 화공을 모두 저잣거리에서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정사와 야사의 기록이 합쳐져 형성된 왕소군의 이미지는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머나먼 오랑캐 땅으로 보내졌던 정치적 희생물이기도 하고, 외교 현안의 해결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주체적 여성이기도 하며, 황제를 속이는 불의에 가담하지 않은 올곧은 기개를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기도하다.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중국 역사상 4대 미녀로 꼽힌다. 평화를 위해 선공후사(先公後私)한 숭고한 미인 왕소군은 시로 노래되고 그림으로 그려졌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