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집단 공격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 이면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2천500여 년 전 동서 충돌이 어른거린다. 둘의 갈등은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정복으로 갈무리된다. 승자 알렉산더는 새로운 방식의 동서 융합에 나선다. 알렉산더가 추구한 정책에서 E.H. 카의 "역사에서 현실 문제 해결 열쇠"를 얻는 지혜를 떠올린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18세기 말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영국은 산업 혁명의 선구자를 넘어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위용을 뽐낸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런던의 여러 건축물 가운데,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국 정부가 1824년 존 줄리어스 앵거스타인의 소장품 38점을 구입하면서 미술관을 열고, 소장품이 늘자 1838년 새 미술관 건물을 지었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유적이다. 1805년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물리친 트라팔가 해전의 주역 넬슨 장군을 기념하는 트라팔가 광장 북단에 세운 미술관은 19세기 서구 사회를 풍미한 신고전주의(Neo-Classic)양식 파사드를 갖췄다. 8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이 장엄하게 솟은 옥토 스타일 입구에 서면 멀리 웨스트민스터 궁(국회)이 한눈에 들어온다.
런던의 다른 국립 박물관처럼 무료인 국립 미술관에는 15세기 르네상스부터 19세기 인상주의까지 서구 미술사를 아로새기는 주옥같은 명화들이 탐방객을 맞아 준다. 무료로 보기에 민망할 만큼 눈과 마음을 호강시키는 작품 가운데 파올로 베로네세(1528~1588)의 '알렉산더 앞 다리우스 가족(The Family of Darius before Alexander, 1565~1567년)'에 시선이 머문다.
◆베네치아 대표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
베로네세는 해상 교역 강국이자 중세 공화국의 상징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후기 화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베네치아 인근) 출신이어서 '베로네세(베로나 사람)'라고 부른다. 티치아노, 틴토레토와 함께 16세기 베네치아를 수놓는 베로네세의 그림은 화려함과 웅장함의 상징처럼 불린다. 선명한 붉은색, 녹색, 금색의 원색에 대리석 계단, 기둥, 아치 같은 웅장한 로마 건축물을 표현해 마치 연극 무대 같은 구성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도 많다. 파리 루브르 '가나의 혼인 잔치(1563년)'는 그 대표작이다.
'알렉산더 앞 다리우스 가족'을 뜯어보자. 배경에 거대한 아치를 갖춘 로마 건물이 보인다. 그 앞에 화려한 원색의 옷을 입은 인물군은 크게 오른쪽 남성들, 왼쪽 여성들로 나뉜다. 남성 인물군 중앙에 자주색 튜니카를 입은 인물이 알렉산더다. 어깨에서 가슴을 거쳐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가죽 프테리게스(복부와 허벅지 보호대)가 금빛으로 번쩍인다. 양손을 벌려 앞에 있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 왼쪽 녹색 옷을 입은 인물은 헤파이스티온. 알렉산더의 절친이자 동성애 파트너다. 머리가 벗어졌고, 턱수염이 더부룩해 일견 알렉산더보다 더 나이 들고, 높은 지위처럼 보인다.
이제 시선을 왼쪽 여성 인물군으로 돌려보자. 중앙에서 무릎 꿇고 알렉산더를 바라보며 옆모습만 나오는 중년 여인 이름은 시시감비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마지막 황제 다리우스 3세의 어머니다. 그 뒤에 보이는 금발의 여인, 진주 목걸이를 걸고, 가슴에 황금 팩토랄을 찬 여인은 누구일까. 페르시아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다리우스 3세의 왕비 스타테이라. 그 뒤 어린 소녀들은 다리우스 3세의 딸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베로네세가 알렉산더보다 헤파이스티온을 더 나이 들고 위엄 있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시시감비스가 헤파이스티온을 알렉산더로 착각해 그 앞에서 무릎을 먼저 꿇었다는 일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결과다. 여인들 뒤엔 원숭이가 있다. 르네상스, 바로크 회화에서 원숭이는 허영이나 인간의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알렉산더가 다리우스 3세를 이긴 이수스 전투
그렇다면 다리우스 3세의 모후와 왕비, 딸들이 왜 알렉산더 앞에서 마치 용서를 구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일까. 기원전 333년 11월 오늘날 튀르키예 남부 이스켄데룬 지역 이수스 전투(Battle of Issus)의 결과다. 알렉산더가 이끄는 4만명 그리스 연합군이 수가 훨씬 많았던 다리우스 3세 군대를 물리친다. 256명(16×16명)으로 구성된 신타그마(마케도니아 정예 보병 팔랑크스)와 강력한 기병대가 페르시아군을 압도했다. 알렉산더는 이때 좌익 기병대를 맨 앞에서 이끌었다. 다리우스 3세는 간신히 몸만 빠져 도주한다.
이 장면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의 '이수스 전투(모자이크, 기원전 1세기 제작, 폼페이 출토)에 잘 묘사돼 있다. 투구도 쓰지 않고 용맹스럽게 공격하는 알렉산더와 겁먹은 다리우스 3세의 표정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인류 최초의 대제국 페르시아 붕괴 순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알렉산더가 포로로 잡은 페르시아 왕실 여인들을 잘 보호했다고 기록한다. 베로네세의 작품은 이런 기록에 근거한 역사화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31년 메소포타미아 티그리스 강변 과가멜라에서 다시 한 번 다리우스 3세를 격파하고, 도망간 다리우스 3세는 이듬해인 기원전 330년 박트리아 총독이자 친척인 베수스 손에 암살된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붕괴다. 베수스를 잡아 처형하고, 페르시아 제국 계승자를 선언한 알렉산더는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한다. 다리우스 1세가 기원전 6세기 말 건설한 제국의 의례용 수도 페르세폴리스는 그렇게 역사의 폐허로 묻힌다. 플루타르코스는 페르세폴리스 파괴가 심포지온(회식) 도중 즉흥적으로 이뤄졌다고 기록한다. 알렉산더가 총애하던 아테네 출신 헤타이라(기생) 타이스가 기원전 480년 2차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불태운 것에 대한 보복을 제안했고, 알렉산더가 술김에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리스-페르시아 동서 합동결혼식
알렉산더는 기원전 329년 사마르칸드(마라칸다), 기원전 327년 소그드 바위 요새를 함락시킨다. 이때 영주 옥시아르테스의 딸 록사나(Roxana, 빛나는 여인)에 반해 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장인 옥시아르테스를 총독으로 삼은 뒤 남쪽 인더스강 유역으로 진출한다. 인도 공략을 중단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수도 수사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이벤트를 벌인다. 기원전 324년 그리스 연합군의 주력인 마케도니아 장군들과 페르시아 귀족 여성들의 합동결혼식이다. 마케도니아 핵심 장군 80명, 병사 1만여 명이 페르시아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 합동결혼식에서 알렉산더도 추가로 2명의 여인을 아내로 얻는다. 첫 왕비 록사나에 이은 제2왕비는 놀랍게도 다리우스 3세의 딸 스타테이라 2세다. 기원전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포로로 잡힐 때 소녀에서 어느덧 성년으로 자라 알렉산더의 동서 융합 정책에 따른 2왕비가 된 것이다. 3왕비는 파리사티스 2세다. 과거 페르시아왕 아르타 크세르크세스 3세의 딸이다.
페르시아와 혈통으로 확실하게 동서, 즉 그리스와 페르시아 융합을 추구했던 동서 합동결혼식(Susa Weddings)은 성공했을까. 결혼식 1년 뒤인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가 34살의 나이로 급사하면서 대부분의 마케도니아 장군과 병사들이 이혼한다. 록사나가 낳은 알렉산더의 아들 알렉산더 4세는 알렉산더의 융합 꿈이었지만, 기원전 310년 경 마케도니아 왕권을 차지하려는 카산드로스에게 록사나와 함께 살해된다. 비록 결혼을 통한 그리스와 페르시아 융합 꿈은 무산됐지만, 그리스+페르시아+이집트 문화 융합, 여기에 훗날 인도 불교까지 가미된 동서 융합의 헬레니즘 학문·예술·문화는 인류 역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를 수놓는다.
역사저널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