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0>장(醬)으로 전통을 이어가다

입력 2026-05-18 11: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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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장으로 세계시장 노리는 구미 김태형·예천 박명희 청년농부
장 계승에 가공, 체험교육까지 확대

자연 건조되고 있는 메주. 김태형 씨 제공
자연 건조되고 있는 메주. 김태형 씨 제공

5월 30일은 '한국 장데이'(장류 먹는 날)다. 경북도가 2024년 우리 전통 장(醬)의 우수성을 알리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선포했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그해 12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발효 자산이 된 것이다.

김태형(38) 씨와 박명희(44) 씨는 이런 장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농업인들이다. 둘 다 가업을 승계했다.

전통 장류 계승자 3대인 김태형 씨. 본인 제공
전통 장류 계승자 3대인 김태형 씨. 본인 제공

〈김태형 청년농부〉

구미시에서 3대째 전통 장류를 이어오고 있는 김태형 씨는 현재 부모님과 함께 백야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1만6천529㎡ 규모로 콩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된장, 고추장, 간장, 보리막장, 청국장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에 더해 장류 가공제품을 개발하고 있고 체험 프로그램도 병행 중이다. 올 10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김태형 씨 농원 마당에 늘어서 있는 장독대. 본인 제공
김태형 씨 농원 마당에 늘어서 있는 장독대. 본인 제공

◆귀농 2년 만에 가업 안정 궤도

장류 제조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23년부터다. 이전에는 쉐프로 일했고 8년간 자영업도 하며 사업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코로나 시국을 맞았고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 끝에 귀농을 결정했다.

사실 농사는 어릴 적 주말마다 부모님을 도와 해오던 일이라 큰 부담이 없었다. 가장 크게 작용한 부분은 전통 장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16년 요리 경력을 통해 장류가 단순 옛날 식품이 아니라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매력적인 식재료라는 확신도 있었다. 여기에 로컬푸드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면서 전통 장류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느낀 것도 한 몫 했다.

그렇지만 이런 그의 선택을 바라보는 주변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전통 장은 젊은 세대를 비롯해 수요층이 많지 않고 수익 구조가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험 프로그램과 온라인 판매를 통해 매출이 성장하고 운영이 안정돼가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전통 장류의 맥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응원도 늘었다.

김태형 씨가 모친과 함께 된장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김태형 씨가 모친과 함께 된장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전통 기반에 현대적 요소 가미

백야농원에서는 전통 방식을 기반으로 장을 제조한다. 직접 재배한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자연환경 속에서 발효와 숙성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씨간장을 기반으로 덧장 방식으로 장을 담그는 것이 특징이다. 덧장 방식은 기존 장에 새로운 원료를 더해가며 발효를 이어가는 것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과 향이 더해진다. 이는 오랜 시간 축적된 미생물 환경을 유지할 수 있어 장의 풍미와 품질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위생 관리와 품질 유지를 위해 설비는 현대적인 것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 장류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가공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청국장을 분말 형태로 가공하는 등 장을 일상 속에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다. 안정적인 제품 생산을 위해 현재 경북농업기술원의 '특화발효장류산업화 시범사업'에도 참여해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제품 생산 및 판매에 그치지 않고 전통 장류의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체험교육농장을 통해 직접 장을 만드는 체험에서 나아가 전통 장으로 소스나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청국장 티라미슈 만들기의 경우 장류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는 차원이라 체험객들의 반응이 꽤 좋다. 방문객은 연간 3천명 정도다.

전통 장류 계승자 2대인 박명희 씨. 본인 제공
전통 장류 계승자 2대인 박명희 씨. 본인 제공

〈박명희 청년농부〉

전통 장류 계승자 2대인 박명희 씨는 시부모로부터 가업을 승계받았다. 현재 예천군에서 '회룡포장수진품'이란 이름으로 메주,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 등 전통 발효식품을 생산·가공하고 있다. 직접 재배한 콩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원료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여기에 전통 장류 가공과 체험프로그램까지 농촌융복합산업으로 발돋움시키고 있다.

박명희 씨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통 장 발효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인 제공
박명희 씨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통 장 발효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인 제공

◆시부모 가업 이어받아 전통 장류 사업 도전

유치원 교사로 일했던 그가 장류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12년부터다. 시부모님이 지켜온 전통 장류의 가치를 계승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고자 결심한 귀농이다. 콩 농사는 전적으로 시부모가 책임지고 있고 그는 농장 대표를 맡아 생산, 홍보, 판매 등을 총괄한다.

현재 생산 및 판매하고 있는 장류는 전통 방식으로 만든 메주,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 등이다. 최근에는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간편식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40초 큐브 된장국'이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전통 장의 깊은 맛은 유지하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아울러 콩과 지역 곡물을 이용해 스파우트 형태의 미숫가루 제품 등 휴대성과 편의성을 높인 가공식품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2018년부터는 교육 전공을 살려 전통 식문화 교육과 지역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체험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사업적인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제품 라인업 확대와 온라인 판매 강화, 브랜드 인지도 제고다. 특히 간편식 제품의 시장 안착과 충성 고객 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전통 장류를 기반으로 한 농촌융복합 대표 모델로 성장해 지역과 상생하는 브랜드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는 "전통 장류 산업은 생산 과정의 어려움과 긴 숙성 기간,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점차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대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박명희 씨가 간편식으로 개발한
박명희 씨가 간편식으로 개발한 '40초 큐브 된장국'을 한 홍보행사에서 판매하고 있다. 본인 제공

◆농업은 꾸준함, 인내 필요한 분야

그에게 장류 사업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시간을 쌓아가는 일이다. 전통 장을 만든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과정을 믿고 기다리는 일에 가깝다. 계절의 흐름을 따르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더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음식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귀농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길이 농업'이란 얘기를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노력한 만큼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많고 자연환경과 시장 변화라는 변수도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통 장의 경우에는 시간과 정성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조급함보다는 꾸준함이 중요하다.

또 '농업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과 사람, 그리고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자신만의 철학과 방향을 갖고 지역 농업인들과 상생하며 꾸준히 나아갈 때 농촌에서도 충분히 지속가능한 삶과 의미 있는 성장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을 믿고 버티고 지나왔을 때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보람과 책임감은 그 어떤 일과도 비교하기 어렵다"며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기 보다 실패를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하나씩 쌓아가는 자세가 농업에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청년농업인 지원책으로는 "생산과 수익 창출 사이에 시간차가 있는 만큼 초기 정착 단계에서의 소득 불안정을 완화할 수 있는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며 "가공·유통·마케팅까지 연계된 실질적인 교육과 협력 기반 네트워크 지원 확대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경북에서 시작되는 발효의 미래〉

경북은 전국 콩 생산 2위, 장류 제조업체 260여개 등 장류 생산 기반이 탄탄한 편이다.

이에 경북도는 김치 등에 이은 K-푸드 후속 주자로 전통 장에 주목, 장류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선도해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북 공동 장 브랜드 'GUSU(구수)' 개발, '530 한국 장데이' 선포, 특화발효장류산업화 시범사업 등이다.

경북 공동의 장 브랜드(GUSU) 구축사업은 장의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고객 신뢰도를 높이고 국내외 시장 판로도 공동 개척하는 프로젝트다.

'530 한국 장데이'는 5월 30일을 장 먹는 날로 선포해 전통 장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자구책 차원이다. 국내 1인당 된장 소비가 10년 사이 30% 넘게 줄어든 현실에서 전통장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문화적 실천 및 전략적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특화발효장류산업화 시범사업'은 전통 발효기술의 현대화를 위한 것으로 제품 개발·위생 관리·디자인·마케팅을 지원한다.

김성연 경북농업기술원 농식품창업팀장은 "전통 장류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가 담긴 자산이자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식품"이라며 "공동브랜드 활성화와 품질 고도화, 판로 확대를 통해 장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도 돕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