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죽음 이후,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동이족 선조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

입력 2026-04-20 14:21:05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하촌 유지 춮토 옹관묘
대하촌 유지 춮토 옹관묘

◆죽음 너머를 묻다
생로병사,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간단하게 표현한 말이다. 죽음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인간에게는 삶의 연장이자 통과의례의 하나이다. 오늘날은 산자와 죽은 자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장례식장이 따로 있지 않았다. 사자(死者)는 동네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매장지로 향했다. 사자를 함께 배웅하는 일은 마을공동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길고 짧을 뿐, 태어나서 나이 먹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겪는 일이다. 그렇다면 죽음 너머에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답을 찾는 일은 저 까마득한 옛날, 인류의 시작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옛사람들, 특히 동이족 선조들의 매장 풍습을 통해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하량에서 출토된 탑형기
우하량에서 출토된 탑형기

◆동이족과 요화문명권
동이족의 활동 권역은 크게 한반도를 포함한 요하문명권, 황하 중상류 유역권, 황하 하류 및 산동반도 유역권과 장강 중하류유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동이족 사후 세계관을 알려주는 문명은 요하문명권의 흥륭와문화(BC6200~BC5200)이다. 요하문명권은 홍산문화를 대표 문화로 하며, 위도 40°N에서 45°N 사이에 있다. 만 년 전 이곳의 기온은 점점 상승했고 BC 6500~ BC1000 사이에 가장 따뜻한 대온난기를 맞이했다. 때문에 이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 되었다. 특히 위도 42°N 부근에는 요하문명권의 핵심지역인 내몽골 홍산(紅山)이 있는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시라무렌강(西拉木伦河)과 서요하(西遼河) 사이에 노합하(老哈河), 교래하(敎來河)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요하문명권의 동이족들은 따뜻한 날씨, 풍부한 물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점차 먹고 사는 걱정을 넘어 정신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홍산의 동쪽, 조금 더 낮은 위도에 있는 내몽골 오한기(敖漢旗)에서 동북쪽으로 2~3시간가량 차를 타고 이동하면 흥륭와문화 유적지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이족의 정신세계, 특히 사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우하량에서 출토된 통형기
우하량에서 출토된 통형기

◆삶과 죽음이 공존한 세계
흥륭와 사람들은 시신을 집안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거실장·居室葬 풍습). 이때 껴묻거리로 돼지를 같이 매장했다. 돼지는 새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동이족의 문화상징이다. 돼지는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고, 모든 생명의 원기가 나온다고 여겨진 북두칠성의 북두를 상징하기도 한다. 거실장 풍습은 삶과 죽음을 나누지 않은 세계관의 반영이다. 조상과 후손이 같은 공간에 공존할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뜻이다. 또 거실장 풍습은 죽은자가 그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곁에 남아서 그들을 보호해 준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것이 초기 조상숭배 사상의 모습으로서 제사와 의례의 기원이 되었다.

거실장 풍습은 요녕성(遼寧省) 부신(阜新)시 사해문화(査海文化 BC6000~BC5500)로 이어진다. 사해문화의 한 거주지에서 발견된 무덤의 어린아이는 목과 복부에 두 쌍의 대·중·소 옥비 (玉匕)를 차고 있었다. 어린아이 시신에 옥을 부장한 것은 그 아이가 특별한 존재, 즉 제사의 대상이었음을 말해준다. 옥의 부장은 신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실장의 풍습은 황하유역에서도 나타난다. 황하유역 앙소문화 대하촌 유적지에서 출토된 옹관묘는 대부분 어린아이의 매장에 사용되었다. 옹관묘는 주거지 안이나 씨족 공동묘지 안에서 발굴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옹관묘 중앙이나 하단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 구멍은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가 어린아이 영혼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려고 뚫었을 것이다. 일찍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들은 아이의 영혼이 구멍으로 드나들면서 나와 소통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에서 구멍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편 사해문화 유적지에는 환호(環壕·해자)로 둘러 쌓인 크고 작은 거주지가 있다. 가장 큰 거주지는 개방된 중앙 광장을 마주하고 있고, 광장에는 돌로 쌓은 거대한 용, 즉 석소룡이 자리했다. 마을 중앙 광장에 석소룡이 있다는 것은 용을 매우 숭상했음을 잘 보여준다. 사해문화에서 발굴된 도자기 파편에는 '부조 용 문양'이 있었다. 중국의 고고학자 소병기는 이곳을 '용의 고향, 문명의 발원지'라고 했다.

사해유지 출토 용무늬 조각
사해유지 출토 용무늬 조각

◆영혼을 하늘로 이끄는 존재, 용
용은 물과 관련되어 있으면서 스스로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이 있다. 92세의 노모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도 그런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산골에 살았던 노모는 배추를 팔러 새벽시장을 가는 중이었다. 노모는 둑을 따라 한참을 가는 데, 어느 순간부터 안개가 끼더니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개가 풍덩하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고 걷혔는데, 어른들이 노모의 말을 듣고 "용이 승천할 때 사람이 보면 안되는데 네가 지나가서 용이 승천을 못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노모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근현대까지도 용은 하늘로 올라가는 동물로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물과 지하 세계이며, 영혼이 올라가는 곳은 생명이 시작되는 곳, 하늘이다. 『산해경』에는 이수(伊水)와 양수(陽水) 속에 사는 명사(鳴蛇)와 화사(化蛇)가 나온다. 『산해경』에 따르면 명사는 뱀 같으나 네 개의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화사는 새의 날개를 가졌으나 뱀처럼 기어다닌다. 즉 명사나 화사는 뱀과 새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뱀은 땅 속을 드나드는 지하 세계를 상징하고, 날개는 하늘을 나는 새의 속성을 나타낸다. 이처럼 지하 세계와 하늘을 넘나드는 속성이 결합된 명사와 화사는 일종의 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죽음 이후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존재로 여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흥륭와문화에서 생겨난 돼지숭배 풍습은 이후 사해문화에서 나타난 용과 결합되어 홍산문화에서는 용과 돼기가 결합된 옥저룡이 된다. 그들의 세계관으로 볼때 생명의 원기가 나오는 북두의 상징이 돼지이고,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 간다고 믿은 용의 결합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이족들은 죽음 이후에 영혼은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흥륭와문화와 사해문화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삶의 방식은 홍산문화에서 변화된다. 사회가 분화되고, 조상숭배 사상에서 의례가 강조되고 또 신앙이 발달하면서 거실장 풍습은 점차 사라지고 죽은 자들의 집은 새로운 장소에 지어지게 되었다.

호두구유적에서 발견된 새 거북 물고기 삼련옥벽
호두구유적에서 발견된 새 거북 물고기 삼련옥벽

◆죽음 이후, 하늘로 돌아가는 길
홍산문화의 무덤군은 대부분 높은 산에 위치하며,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과 땅을 상징하는 방형 형태의 재단도 산에 조성되어 있다. 홍산문화인들이 무덤을 돌로 만든 것은 영원성을 상징한다. 돌로 만든 적석묘 묘장 문화는 흥륭와 문화에서부터 내려오는 홍산문화 사람들의 묘장 전통이며,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묘장문화이다. 묘장문화는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과 깊이 맞닿아 있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조들인 배달족이 이룬 문화이다.

적석묘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채도 통형 토기는 내부가 비어 있고, 바닥이 없는 붉은 토기이다. 이 토기는 검은색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매우 규칙적이다. 또 '탑'형 토기도 있는데 바닥이 없고 몸통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무늬가 새겨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것을 용비늘무늬(龙鳞纹)라고 한다. '탑'형 토기도 통형 토기처럼 적석묘 위에 올려졌다. 탑형 토기는 수량도 적고 형태도 복잡하다. 이 토기가 적석묘에 올려진 위치는 네 방향의 중앙이나 묘의 정중앙으로서 묘주를 더 존귀한 존재로 돋보이게 한다. 이 독특한 토기들은 홍산문화 장례에서만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다. 적석묘에 놓여 있고, 바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로 여긴 것 같다. 그런데 이 탑형의 무늬가 용비늘무늬라는 점으로 볼 때, 홍산문화 사람들은 용을 사후에 신과 연결 해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리라.

◆하늘과 통하는 옥기
고조선의 선조들, 즉 배달족이 만든 홍산문화의 무덤군이 대부분 높은 산에 있는 이유는 하늘과 더 가까이 닿고자 한 바람에서였다. 배달족 선조들은 이때부터 부장품으로 옥만을 묻었다. 옥은 신과 소통하는 도구였다. 옥기들은 거북, 새, 물고기, 삼련옥벽(三联玉璧), 구름형 옥기 등을 포함하여 20여 종에 이른다. 거북과 새와 물고기가 동시 출토된 호두구유적(胡头沟遗址)은 한 묘역에 한 가문, 두 개의 무덤(一冢二墓)만 있으며, 방형과 원형이 결합된 배치 구조를 보인다. 거북은 세계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물고기는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새는 영혼을 운반한다고 여기는데, 거북-물고기-새는 영혼이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대 우리 동이족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말에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한다.

옥으로 장례를 치르는 풍습은 옥으로 신을 섬기기 때문이다. 민국(民國) 시절의 중국의 저명한 학자 왕국유(王国维:1877~1927)는"예(禮)의 본래 의미는 '옥으로 신을 섬기는 것(以玉事神)"이라고 했는데, 홍산문화인의 장례 풍습이 이 말에 딱 맞는 말이다. 중국인들이 예로부터 동이족인 우리나라를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일컫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옥으로 신을 섬기는 나라라는 뜻일 것이다. 옥장례 풍습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했던 동이족 선조들의 하늘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보여준다.

동방문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