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진 시조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벚꽃 아래 피어난 시심, 후지산에 머문 하이쿠의 숨결
봄은 문학인을 길 위로 부른다. 꽃이 피고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계절이 오면, 사람의 마음속에도 저마다 한 줄의 시가 움튼다. 올해 4월 1일부터 4일까지, 대구문인협회 회원 32명은 일본으로 특별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이름하여 '2026 후지산 벚꽃과 하이쿠 문학여행'. 벚꽃이 절정에 이른 일본의 봄 풍경 속에서 하이쿠의 본고장을 직접 체험하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특히 안윤하 회장과 류시경 추진위원장의 세심한 인솔 아래, 일행은 다섯 개 조로 나뉘어 시종일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여행 내내 문인으로서의 품격과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시심을 나누는 모습은 이번 문학기행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첫날, 대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봄 구름 사이를 지나 일본 나리타공항에 닿았다. 문학기행의 첫 방문지는 도쿄에 자리한 하이쿠문학관이었다. 이곳에는 무려 4만 5천 권의 하이쿠 시집이 소장되어 있어 일본 정형시의 깊은 전통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하이쿠는 5·7·5의 음수율을 지닌 17자의 가장 짧은 정형시다. 짧지만 그 안에 계절과 풍경, 인간의 감정을 압축해 담아내는 힘은 실로 놀랍다.
이 자리에서 회원들은 하이쿠의 거장 마츠오 바쇼의 대표작 <개구리>를 다시 음미했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퐁당 물소리"
단 세 줄 속에 고요한 시간과 순간의 파문이 함께 살아 움직인다. 짧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은 회원들의 가슴에 문학의 첫 물결로 번져갔다.
이어 찾은 곳은 벚꽃으로 이름난 에도시대의 역사와 황실의 흔적을 간직한 정원 신주쿠교엔이었다. 약 1,500그루의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봄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봄비가 소리 없이 내려 꽃잎을 적셨지만, 오히려 그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은은했다. 회원들은 우산 아래서 저마다 한 편의 하이쿠를 지었다. 꽃잎 위에 맺힌 빗방울처럼 시심도 맑게 번져갔다. 저녁에는 롯폰기 힐즈 54층 전망대에 올라 도쿄 시내와 도쿄 타워의 야경을 한눈에 담았다. 빛으로 수놓인 도시의 밤은 또 하나의 시적 풍경이었다.
둘째 날, 일행은 후지산의 절경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아라쿠라야마 센겐공원으로 향했다. 봄비가 지나간 뒤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오히려 그 청량함이 풍경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파노라마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 가와구치코 호수와 후지산이 동시에 보이는 전망대에 섰을 때,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흰 눈을 이고 선 후지산은 장엄했고, 그 앞에서 인간의 언어는 오히려 더 짧아졌다. 그래서 하이쿠가 더욱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이후 일본 전통의 오층탑을 보기 위해 398계단을 오르내리며 주변 가옥 구조와 정원의 미학도 살펴보았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즉석 하이쿠 발표회가 열렸다. 후지산과 벚꽃을 주제로 회원 모두가 한 편씩 시를 지어 낭송했고, 여행 후에는 개인당 10편에서 30편의 작품을 모아 하이쿠 기행 작품집으로 엮을 예정이라는 안윤하 회장의 설명에 모두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야마나시의 이사와 뷰 호텔에 도착한 뒤에는 일본 전통 가정식으로 저녁을 나누고, 실내탕과 노천탕에서 여독을 풀었다. 정갈한 일본 정원과 다다미방의 고즈넉함은 여행의 품격을 더해주었다.
셋째 날, 일행은 이번 여행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후지산 등정에 나섰다. 본래 5합목까지 가능했으나, 이틀 전 내린 많은 비로 안전 문제상 1합목까지만 허용되었다. 비록 높은 곳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직접 후지산의 대지를 발로 딛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운해가 자욱이 깔린 산자락은 신비로웠고, 모두가 자연 앞에서 경건해졌다.
이어 하코네국립공원의 오와쿠다니 계곡에서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관을 감상하고, 검은 달걀 구로다마고를 맛보는 특별한 체험도 이어졌다. 약 3천 년 전 형성된 아시노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호수는 유난히 맑고 깊었다. 또한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 중턱의 삼나무 숲은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하게 서 있어 자연의 위엄을 다시금 느끼게 함과 동시에 또 다른 시적 영감을 선사했다.
마지막 날, 나리타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다소 정체가 심했지만, 차 안은 오히려 또 하나의 문학 무대가 되었다. 하이쿠상 시상식이 열려 대상, 우수상, 다작상, 아차상 등이 수여되었고, 설준원 감사가 다작상을 수상하며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작은 이벤트성 상금과 상품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 벚꽃과 후지산이었다. 그러나 더 깊이 남은 것은 그 풍경 속에서 피어난 시심이었다. 눈앞의 자연을 시로 옮기며 걷는 시간, 회원들이 함께 웃고 낭송하며 마음을 나눈 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결국 문학기행이란 단순히 장소를 보는 여행이 아니다. 풍경을 마음에 담고, 마음을 언어로 옮기며, 삶을 한층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길이다. 이번 일본 하이쿠 문학여행은 대구문인협회 회원들에게 봄날의 아름다운 추억이자 오래도록 남을 한 권의 시집 같은 시간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