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기존 관문성(關門性)들을 잃으며 마냥 쇠락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저변에서 꾸준히 대구를 주목하는 장소·소재가 분명 있다. 이걸 더욱 끌어올리면서 그 의미를 추출해 다른 분야에 창의적으로 접목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
◆소원의 메카 팔공산 갓바위
타지 사람을 불러들여 돈을 쓰도록 만드는 게 기본인 여행산업이 인위적 노력과 비용 투입 없이 저절로 구현되는 곳이 있다. 팔공산 갓바위다.
보물(구 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으로 불리는 팔공산 관봉 정상부 4m 높이 석상으로, 9세기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에 갓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많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게 팔공산 갓바위다.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전설, 석상이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을 바라보고 있어 해당 지역 사람들이 특히 효험을 본다는 속설 등 전국의 발길을 부르는 스토리 마케팅은 억만금을 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연 300만명 안팎이 갓바위를 찾는데, 최근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돼 화제가 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이 지난해(2025년) 650만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정상부 면적이 260㎡(80평)인 갓바위는 단위면적 당 방문객이 세계적 수준이다. 연 200만~300만 무슬림이 방문하는 이슬람교 성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카바 신전에도 비유할 수 있는 사례다.
'살고 싶은 그곳, 흥미로운 대구 여행'(2014)을 펴낸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12년 전 팔공산 갓바위를 가리켜 "가히 세계 최고의 장소성을 가졌다"면서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통이 커서 그런지 몰라도 세계적인 갓바위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아마도 갓바위가 다른 지방에 존재했다면 벌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것이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팔공산 갓바위는 주소지가 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번지이긴 한데, 경산과 대구 동구에서 각각 오르는 길이 있어 향후 대구경북 통합을 재추진할 때 상징적 장소로 삼을 수 있다.
◆공룡 발자국 최다 대도시
발굴과 조명의 완성도가 부족한 대구의 관문성 소재로 '공룡 발자국'이 있다.
1994년 한 시민이 신천에서, 2001년 한 교사가 욱수천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을 잇따라 발견했고, 이후 전문가들의 연구를 거쳐 대구는 전 세계 대도시 가운데 공룡 발자국이 가장 많고 또한 화석이 선명하게 남은 드문 사례로 유명세를 탈 채비를 갖췄다.
신천과 욱수천을 비롯해 노곡동, 신당동, 지묘동 등 대구 도심 도처 공룡 발자국 화석들을 모아 현장학습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2002년 임성규 경북대 지구과학교육과 명예교수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이후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는 대구 남구 고산골에 지난 2016년 공룡공원이 조성되는 등 관심이 나타나긴 했지만, 일부 공룡 발자국들은 물 속에 잠겨 방치되는 등 과제도 여전한 상황이다.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대구'(2024)를 펴낸 대구 출신 은동진 한국사 강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부 대학·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자연사박물관이 있지만 그 규모가 작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구가 공룡수도 자격으로 유치할 수는 없을까"라고 제안했다.
◆글로벌 치맥 관문 노린다
실은 순항 중인 사례가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대구치맥페스티벌'이다.
대구권에서 사과농업 만큼 흥했던 양계산업이 연결고리다. 그 기반 위에서 멕시칸치킨·스머프치킨·멕시카나·페리카나·교촌치킨·처갓집양념치킨·호식이두마리치킨·종국이두마리치킨·땅땅치킨·치맥킹 등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탄생했다. 이후 치킨에 맥주를 곁들이는 인기 식문화 '치맥'을 대구의 특징인 무더운 여름 시기에 축제 소재로 쓴 것이다.
여기에 통일신라의 '서라벌(경주)→달구벌(대구)' 천도 추진 이야기가 가미된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2014년 6월 21일 자 매일신문 '통일신라 새 수도 달구벌 이면엔' 기고를 통해 "이 지역(대구)은 경주 김씨 세력과 각별한 관계가 있었다. 시조 김알지 탄생지가 흰 닭 울음소리와 관련돼 계림(鷄林)이라 이름 붙인 데서 드러나듯 김씨는 원래 닭을 조상신으로 여겨 숭배한 부족"이라며 "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은 '닭의 벌판'이라는 뜻으로 이들과 각별한 친연성을 가졌다"고 풀이했다.
과거의 이야기가 받쳐주고 현재의 기획도 성공하며 나흘 내지 닷새 남짓 기간 열리는 축제 방문객은 2013년 첫 행사 27만명에서 지난해(2025년) 115만명으로 325% 증가했다. 4년 연속 100만명 돌파 기록이기도 하다. 이를 근거로 대구치맥페스티벌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6 예비 글로벌 축제에 선정됐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상대로 치맥 관문이 되라는 정책 지원이다.
실은 서울에서 3년 먼저(2010년) 치킨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전국 각지에서 치킨을 소재로 축제를 시도했지만, 인지도는 대구가 압도적이다. '치맥' 하면 '대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대법원 품어 법조 관문 될까?
미래 대구가 새 관문으로 삼을 수 있는 요소를 정치권이 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대법원 대구 이전이다. 대구가 대한민국 법조 관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다.
대법원은 광복 후 미군정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두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대한제국 고종 때 의금부→고등재판소→평리원으로 개칭한 게 근간이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최고법원 대심원 아래 고등법원으로 격하됐다가 광복 후 지금의 체계를 갖춘 것이다.
다만, 청사는 대한제국과 일제 때 서울 중구 서소문동 건물(현 서울시립미술관)을 계속 쓰던 걸 1995년 지금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그로부터 수십년 시간이 흘러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이전론 등 국토 균형발전 기조 위에서 함께 거론된 게 대법원 대구 이전론이다.
진영 가리지 않고 꾸준히 제기했다. 2019년 당시 강효상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이, 2020년엔 국민의힘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의원이 주장했고,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근엔 아예 대법원 대구 이전 골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임미애·김용민·권칠승 민주당 의원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앞다퉈 발의했다. 헌법재판소 광주 이전론과 커플링 사안이다.
차규근·권칠승 의원은 "대구는 수도권과 물리적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영남의 중심지"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2.28 대구학생의거를 통해 4.19 혁명의 불씨를 지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도시다. 그 역사성을 보존하고 대법원이 소재하기에 충분한 의의를 지닌 지역인 바,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소재지로 적절한 도시"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 추가할 의미 부여의 힌트는 대구지법이 대구 수성구 범어동으로 1973년 이전하기 전까지 자리했던 대구 중구 공평동 동명에서 얻을 수 있다. '모든 일을 공평(公平)하게 처리하라'는 뜻으로 명명됐다. 실은 서울 종로구에도 같은 한자를 쓰는 공평동이 있는데, 이건 과거의 법원인 셈인 조선 의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일제가 국민들의 반감을 줄이고자 갖다 붙인 것이다.
대구 공평동은 1908년 대구공소원(대구고법)과 대구지방재판소(대구지법)가 개원한 곳으로, 당시 공소원은 전국에 대구를 비롯해 경성과 평양 등 3곳에만 설치됐다. 대구공소원은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현재 우리나라 남부지방 전역을 관할하는 법조 관문이었다. 그 존재감을 부활시키는 의미가 대법원 대구 이전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런 여러 이야기를 모아 대한민국 법조 관문의 서사를 후대에 전해줘야 한다면, 대법원 소재지로는 서울보단 대구가 더 어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