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다방기행문
유성용 지음/ 책읽는수요일 펴냄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스쿠터를 타고 전국의 다방을 다닌 남자가 있다. 사찰기행도 아니고 문화유산과 비경이 아니라, 하다못해 오래된 책방이나 식당이 아니라, 다방이라니. '여행 생활자' 유성용의 『다방기행문』은 오래된 것들에 대한 헌사이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다방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쇠락하는 풍경을 담은 사진집 같은 무엇이다.
작가는 출발에 앞서 대형카메라를 팔아 스냅 카메라로 바꾸고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불을 빨아 말려두고, 신발을 정리했으며, 인터넷 약정을 끊고 일기를 숨기고 편지를 태운다. 먼길 떠나는 여행자의 거룩한 의식 같은 것. 길 위에서 멈출지도 모를 삶에 대한 정갈한 정리다. 그렇게 전국의 다방을 찾아 나선 길고 긴 여정은 최북단 대진의 <초양다방>에서 시작해 전태일 동상이 세워진 청계천 <명보다방>에서 끝난다.
다방 기행이라고 여급들과 시시덕거리면서 커피나 홀짝이는 팔자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는 곳마다 아프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연이 즐비하고 한 시대를 넘어선 질곡의 역사가 피어오른다. 예컨대 태백시 <향록다방>에서 트럭 운전사 사내의 울음소리에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밖으로 나왔을 때, 펑펑 내린 눈이 스쿠터에 쌓인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은 가히 절창이다. 경북 춘양의 <앵두다방>과 영양 <향수다방>에서 50년 넘은 역사를 보았지만, 애초의 흔적이 남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대개 스스로도 제 기억을 잃는 법이다."
초창기 다방은 원두를 직접 갈아 필터식 커피를 썼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PX를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들어왔고, 소위 다방커피라 불리는 인스턴트커피가 주종을 이룬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예전처럼 필터식 원두커피를 내는 집을 '맹물다방'이라고 불렀다는 것. 너무 연해 맹물 같은 커피 맛이라서. 작가가 경주시 불국동에서 만난 <맹물다방>은 그러나, 인스턴트커피를 내는 집이었다.
인상 깊기로는 삼천포 <은파다방>도 못지않다. 어시장과 횟집들의 북적임이 한풀 꺾일 즈음 빨간 간판이 걸린 거짓말같이 아름다운 이름 은파(銀波). 그래서 그는 이렇게 카페인을 권한다. "은빛 물결 반짝이는 봄날, 봄바다 마주하고 저승 갔다 온 마음아, 언제 그곳에 들러 커피 한잔하시오. 나는 거기서 아가씨들과 수다 떨며 연거푸 여러 잔 커피 마셨다가 심장이 붕 떠서 골로 갈 뻔했다오."
유성용은 스쿠터로 전국의 다방을 헤집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마을 사람과 길손과 자신과 비슷한 여행자들. 낯선 이들과 뒤섞이며 커피 한 잔에 희로애락을 쏟아내는 다방. 그곳에서 본명도 아닌 이름을 가진 송 양, 하 양, 김 양, 이 양 등 많은 레지를 만났고, 가끔 나풀거리는 인생들끼리 나누는 별것 아닌 시간이 정답고 좋았다고 적는다. 그네들의 사연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걸 나그네의 예의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다방기행문』이 신파로 흐르지 않고 단단한 기행문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신) 포항 인근 청진항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청진이용원>. 언젠가 이곳에서 머리를 깎아 보리라 다짐했으나, 인터넷 검색에 안 뜨는 걸 보니 문을 닫은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