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어둠 속 반짝이는 존재들을 기록하다…권도연 개인전 '녹투라마'

입력 2026-03-29 14: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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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까지 021갤러리

권도연, 야간행 9, 2022.
권도연, 야간행 9, 2022.
권도연, 야간행 8, 2022.
권도연, 야간행 8, 2022.
021갤러리에서 만난 권도연 작가. 이연정 기자
021갤러리에서 만난 권도연 작가. 이연정 기자

인간이 잠든 적막한 밤, 눈을 반짝이는 생명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인간의 욕심으로 살 곳이 사라져 방황하고,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그들의 눈빛은 사진 속에 남아 이렇게 얘기한다. 기억되고 싶다고.

021갤러리가 4년 만에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녹투라마(Nocturama)'를 선보이고 있다.

'녹투라마'는 W.G.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에 등장하는 안트베르펜 동물원의 '야생성 동물관'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소설 속 화자가 인공적인 어둠 속에서 유리 너머 동물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시간과 기억의 심연을 마주했듯, 작가는 사진을 통해 우리 주변의 밤과 그 속에 부유하는 존재들을 깊이 있게 응시한다.

주요 연작인 '야간행' 중 눈에 띄는 작업은 소백산에 방사된 아기 여우 한 마리가 부산 해운대까지 이동한 400km의 길을 따라가며 기록한 것이다. 그가 1년 가량을 쫓으며 그 여우를 만난 건 딱 두 번. 그 때 포착한 사진 속에는 어두운 밤 숲 속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우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는 다시 여우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여우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 '파도(Wave)'를 기록했다. 작가는 "어린 여우는 과연 무엇을 봤을까? 이 작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며 "누군가가 잃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다만 꽤 오랜 시간 시선과 생각이 머물게 하는 힘을 가졌다. 기후 변화로 인해 집단 고사한 울진 금강송이나 울진과 삼척을 덮친 산불로 인해 새로운 터전을 찾아가는 산양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한반도에 급증한 떼까마귀의 숲, 순천 농장에서 탈출해 자연 번식하며 야간의 도심을 돌아다니게 된 꽃사슴들도 마찬가지.

"도시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모두가 잠든 밤에 모습을 드러내는 야생동물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과도 겹쳐보였습니다. 마치 저나 주변의 약자들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연민과 관심을 두고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권도연, 반짝반짝 빛나는 8, 2023.
권도연, 반짝반짝 빛나는 8, 2023.
021갤러리 전시 전경. 이연정 기자
021갤러리 전시 전경. 이연정 기자
권도연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권도연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또 다른 작품 '반짝반짝 빛나는(Twinkling)'은 한강 하구의 인공 시설 녹지나 섬과 같은 '생태적 틈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기록했다. 행주대교와 올림픽대로 사이, 도로에 갇힌 고립된 장소에서 작가는 고라니, 너구리, 수달, 삵 등 다양한 동물을 마주했다.

사람의 출입이 없어,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의 매력적인 은신처였던 이 숲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개발 사업으로 단 며칠 만에 사라져버렸다. 2년여 간 동물들이 내뿜는 미세한 빛과 생명력을 포착한 그의 작업은 소멸해가는 것에 대한 애도이자 기록으로 남았다.

작가는 "세상에는 기록해야 할 존재들이 분명 있는데, 내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살아있는 생명을 기록함에 있어, 윤리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다. 그는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어서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강조하기보다, 하나의 풍경 사진처럼 담기도 했다"며 "포수가 총으로 쏘듯이 사진을 찍지 않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제10회 일우사진상과 제1회 랄프깁슨어워드를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바 있다. 한양대 문학과 학사, 상명대 사진과 석사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으며 이번 전시에서 사진 옆에 나란히 전시된 그의 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4월 29일까지. 일, 월요일 휴관. 053-743-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