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에 기름값·산업 직격탄
자원개발률 韓 10% vs 日 40%대
오일쇼크 이후 50년 투자 격차로 이어져
중동 사태로 에너지 안보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복되면서 자국 기술과 자본으로 확보한 자원의 비율인 '자원개발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외 자원개발을 통한 자원 공급망을 확보해 외부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 '자원 빈국'이란 공통 분모를 지닌 일본의 사례에 비춰 중장기적인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자원개발률 격차가 만든 구조적 취약성
우리나라의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중동 리스크가 곧 국내 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구조적 취약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로 들어오는 원유·가스의 주요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물가 상승은 물론 산업계 전반이 큰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 에너지 자원개발률이 주목받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석유·가스 자원개발률은 10.8%에 그쳤다. 지난 1981년부터 해외자원 개발을 시작해 28개국가에서 98개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자원개발률은 2010년 이후 10%대로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자원개발률을 40%대로 끌어올렸다. 일본 정부는 2020년 40%를 달성한 이후 오는 2030년 50%, 2040년까지 60%로 자원개발률을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중장기 계획도 수립했다.
실제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원유 순 수입액 비율은 2024년 기준 4.6%에 달해 인도(3.6%), 일본(1.8%), 중국(1.7%) 등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원유 수입 지역 중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월 물량 기준 70.7%에 달했다.
원유 외에도 2차전지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광물 분야에서도 일본은 유연탄·우라늄·철·동·아연·니켈 등 6대 전략광종의 개발률이 80%에 육박하지만 한국은 30%에 머물며 극명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자원개발로 공급망 충격 흡수
자원개발률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졌을 때 대응력의 차이로 직결된다. 일본은 해외에서 확보한 지분 만큼 자원 물량을 활용해 공급망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수입선 다변화 여력이 제한적인 탓에 국제 가격 변동이 즉각 국내 시장에 반영되는 구조다.
원유 도입선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상황에 수송 차질이나 분쟁 발생 시 대체 물량 확보도 쉽지 않아 비용 부담이 빠르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번 중동 사태 초창기에도 국내 휘발유 가격이 치솟을 때 일본은 상승 폭이 제한적이었다.
비축유도 단기적인 완충 장치에 불과하다. 정부와 민간 기업이 보유한 비축 물량은 일정 기간 공급 공백을 메울 수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특히 석유화학, 철강, 운송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경우 원료 수급 차질이 곧 생산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실물경제 전반의 연쇄 충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장기적인 공급망 확보 전략을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유사한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같은 충격이 되풀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오일쇼크가 만든 일본 모델…민관 협력으로 50년 투자 결실
일본은 5대 종합상사(이토추·마루베니·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스미토모상사)를 중심으로 한 50년 이상의 장기 투자로 에너지 자립도를 높였다.
일본 종합상사의 자원 투자 시점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였다. 두 차례 오일쇼크로 에너지 위기를 체감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원 조달 다각화를 국가 전략으로 설정했다. 이에 기업들이 해외 자원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맡았고 긴밀한 협력 구조를 형성했다. 일본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해외 자원개발에 공적 지원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방식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선택을 받았을 정도로 성공적이다. 2024년 기준 투자기업 버크셔 해서웨이의 일본 5대 상사 보유 자산 총 시장가치는 235억 달러(약 34조 원)에 달하며, 연간 배당 수익만 8억1천2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은퇴 전 주주서한을 통해 5대 상사 지분의 장기 보유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가 이 기업들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하다. 5대 상사의 공통점은 석유·가스·광물 등 에너지·자원 분야에서 오랜 기간 축적된 해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상사의 경우 호주 LNG 사업권을 확보하고 칠레 구리 개발을 추진 중이고 미쓰이물산은 철광석 등에 상당한 지분을 보유 중이다.
앞서 한국도 일본처럼 에너지 공기업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에 나섰지만, 2010년대 '자원외교 논란' 이후 투자가 급속히 위축됐다.
다만 이번 중동 분쟁으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자원개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의 모델은 민간 기업이 주축이 돼 리스크를 분산하고 정부는 제도와 자금으로 뒷받침하는 구조다. 자원 가격이 떨어질 때는 실적이 부진할 수 있지만 사업 자체가 좌초되지 않았다"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수가 된 지금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비용만 따질 문제가 아니다. 국가 주권을 지키는 에너지 안보를 굳건히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원개발률=우리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개발, 생산해 확보한 자원의 물량이 전체 수입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