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매화나무 가지가 화폭 안으로 살짝 드리워졌고 그 아래는 모두 글씨다. 봄이 오니 녹색 여린 햇가지가 묵은 가지에서 새로 뻗어 나왔다. 가지 끝에는 벌써 꽃이 져버린 자주색 꽃받침도, 활짝 핀 흰 매화도, 반쯤 핀 꽃봉오리도, 이제 겨우 맺힌 봉오리도 있다. 한 나무의 같은 가지에서도 꽃송이들은 제각각의 속도로 꽃을 피운다.
그 한 가지에 앉은 두 마리 새. 봄이면 익숙하게 눈에 들어오는 매화요, 새다. 붉은 부리에 연한 갈색조인 새의 깃에는 푸른색, 흰색, 검은색이 섞였다. 우리나라 산야에서 흔히 보이는 참새목에 속하는 방울새 또는 멧새 계열의 작은 들새다. 다정한 새 두 마리는 머리는 같은 방향인데 눈동자는 서로 다른 쪽을 향한다. 유려한 솜씨는 아니지만 세심하게 관찰했고 정성껏 표현했다.
이 '매조도'는 다산(茶山)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객 생활을 한 강진에서 13년째 되는 해에 그렸다. 정약용의 시서화와 그의 가족 사랑이 한 폭에 다 들어있다. 시와 발문으로 이루어진 글씨에 그림을 슬쩍 얹은 구성도 남다르다. 굳이 그림을 더한 것은 딸에게 남긴 기념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바탕은 부인 홍씨가 강진으로 보내온 시집올 때 가져온 치마였다. 이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겐 훈계의 말을 쓴 글씨첩을 만들어주었고 외동딸에게는 이 작품을 줬다. 정약용의 6남 3녀 중 2남 1녀만 장성했다.
자신의 마음이 담긴 시를 핵심으로 하면서 꽃과 새 그림을 더해 딸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축원했다. 잔글씨로 덧붙인 설명은 자신의 가족 이야기인 동시에 지금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적 서사다.
가경 18년 계유(1813년) 7월 14일 열수옹이 다산 동암에서 쓰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지 몇 해 지나 부인 홍씨가 헌 치마 6폭을 보내왔다. 세월이 오래돼 붉은색이 바랬다. 잘라서 4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로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남긴다.
嘉慶十八年 癸酉七月十四日 冽水翁書于茶山東菴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敝裙六幅 歲久紅渝 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매조도'는 정약용의 이름값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다산 시서화의 백미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