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아이팟의 귀환…전자기기 시장 덮친 '레트로 바람'

입력 2026-03-22 13: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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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디지털카메라 촬영 장면. 유튜브 캡처
뉴진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디지털카메라 촬영 장면. 유튜브 캡처

해마다 새로운 첨단 기술을 선보이는 전자기기 시장에도 '레트로'(과거를 재현하는 문화) 열풍이 불고 있다. 카메라와 스트리밍 서비스, 게임기, 전화까지 사실상 모든 휴대 전자기기의 기능을 흡수한 스마트폰 출현 이후 자취를 감췄던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가 다시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듀얼, 트리플 렌즈가 기본인 최신 스마트폰이 아닌 흐릿하지만 특유의 색감을 지닌 구형 모델을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이런 소비 성향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매개체를 넘어 실용성을 갖춘 새로운 모델의 출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도하게 복잡한 기능을 탑재한 최신 기기와 달리 하나의 목적에 집중한 제품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랙핑크 제니가 사용하는 1990년대 초반에 생산된 콘탁스 T2
블랙핑크 제니가 사용하는 1990년대 초반에 생산된 콘탁스 T2

◆ 흐릿함의 미학…디지털카메라·구형폰이 바꾼 '사진 문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카메라 감성을 살린 게시물을 SNS에 올리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노이즈에 과다한 플래시, 색 번짐 등 기존에는 결점으로 여겨졌던 요소들이 오히려 차별화된 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현재 스마트폰이 구현하는 초고해상도 이미지가 일상화되면서 지나치게 선명한 사진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K팝 스타들도 '디카 감성'을 살린 사진을 찍으면서 디지털카메라 중고 거래도 활성화되는 추세다. 지난해까지 불과 2만~3만원 선에 거래되던 일부 모델은 최근 10만원을 넘어섰고 일부 인기 모델은 30만~40만원로 가격이 뛰었다.

신형 디지털카메라 보급도 반등하는 모습이다. 일본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CIPA)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카메라 출하량은 858만 대로 202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 이후 급격히 축소됐던 콤팩트 카메라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고성능 DSLR이나 미러리스가 아닌 CCD 센서를 탑재한 저가형 모델도 판매량이 늘어난 것이다.

흐릿한 사진에 대한 선호도는 스마트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출시된지 10년이 넘은 훌쩍 넘은 아이폰 6 거래가 활발하다.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 표현으로 유명세를 탄 아이폰X·XS 시리즈도 '서브 카메라'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SNS 중심의 콘텐츠 소비 환경에서 완벽한 화질보다 분위기와 감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30대 직장인 A씨는 "스마트폰 사용하기 이전에 물려받아서 쓰던 제품은 보관하다 최근에 다시 꺼내서 사용하는 중"이라며 "이전 세대에 대한 향수도 있지만, 제품 특유의 개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지난 2014년 단종된 애플 아이팟 클래식. 정우태 기자
지난 2014년 단종된 애플 아이팟 클래식. 정우태 기자

◆ 스트리밍 피로감 속 'MP3의 귀환'…소유형 음악 소비 부상

음악 소비 시장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감지된다. 글로벌 음악 산업은 실시간 스트리밍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로 재편됐으나 최근에는 이 같은 일회성 소비 환경에 대한 피로감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 추천에 의존한 음악 감상, 광고 노출, 지속적인 데이터 연결 등이 오히려 이용자 경험을 제한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내가 선택하고 저장하는 음악'에 대한 수요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아이리버, 애플의 아이팟으로 대표되던 MP3 플레이어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1~10월 이베이에서 아이팟 클래식 검색량은 전년 대비 25%, 아이팟 나노는 20% 증가했으며 리퍼비시(재정비) 제품 판매도 상승했다. 일부 모델은 중고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며 프리미엄이 붙는가하면 제조사들은 과거 디자인을 재현한 '복각'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아티스트의 신곡을 MP3 플레이어 형태의 디바이스에 담아 판매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단순 음원 스트리밍을 넘어 기기를 '소유하는 경험'을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용자가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고 기기 내에 저장해 감상하는 경험은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독립된 기기의 사용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받는 각종 알림과 메시지로부터 분리된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 수요를 충족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능이 많을수록 좋은 시대에서, 목적이 분명한 단순한 기기가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며 "레트로 전자기기는 감성을 넘어 하나의 독립적인 시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단종된 아이팟 클래식이 쇼핑 플랫폼에서 거래되고 있다. 네이버쇼핑 캡처
단종된 아이팟 클래식이 쇼핑 플랫폼에서 거래되고 있다. 네이버쇼핑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