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모양 형틀에 묶인 채 몽둥이로 매질을 당한 후 목칼 형틀을 쓴 채 옥에 갇힌 춘향.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의 전형적 고난 장면이다. 그런데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가 그녀의 작고 여린 발바닥을 부서트렸다.'
폴란드 여류시인 쉼보르스카가 읽은 춘향은 이러했다. 춘향의 가녀린 목에 걸린 커다란 형틀에 시각적으로 제압당한 우리와 달리 그녀는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을 끝까지 기억하고 연민의 끈을 놓지 않는다. 과연 춘향의 발꿈치 뼈는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잘 아물었을까?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잘 생긴 배우자 옆에서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첫날 밤 원앙이 수 놓인 이불을 덮어 자신의 뒤틀린 두 발을 애써 가리지 않아도 되었던 것일까? 염려한다.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에서 10대를 보냈고, 전쟁이 끝나자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인 공산주의 시대를 온몸으로 지나왔던 쉼보르스카에게 춘향은 으깨어진 두 발의 현실에도 당최 항복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동화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된 훈련을 못 이겨 집단탈출을 감행한 까까머리 아이들. 가난으로 혹은 무책임으로 돈 몇 푼에 제 부모가 팔아넘긴 아이들이 기껏 경극학교를 탈출하고도 또 경극을 본다. 모두가 웃고 박수 치고 환호하는 가운데 그 아이들은 연신 두 볼을 훔쳐가며 철철 운다. '얼마나 맞았으면 저렇게 할까…' 하면서…. 이 장면에서 극장의 관객들은 그 아이들의 능청스러운 우는 연기에 모두 박장대소했었다.
영화 <패왕별희>하면 모르긴 해도 아마도 다들 두꺼운 분장 속에서도 소름 돋도록 처절했던 장국영의 눈빛 연기를, 그리고 결국 우희처럼, 데이처럼, 자신을 보낸 배우 장국영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패왕별희>는 내게 오래도록 그 아이들의 '얼마나 맞았으면…'이라는 울먹임으로 남았다.
극장 안 관객들이 모두 그 아이들의 눈물을 보고 웃었을 때 나는 그 아이들을 따라 울고 말았기 때문이다. 경극을 보러 온 관객들은 눈앞에 보이는 몸짓 하나, 소리 하나에 그저 감탄하고 웃으면 그뿐이지만 그 아이들은 똑같은 몸짓에서 수많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을 보았기에, 볼 수밖에 없었기에 그 상처와 고통에 공감하여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나는 그 공감의 필연성에 공감하느라 울었던 듯하다.
신참 변호사 시절 '내 일처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정말 내 일처럼 빠져들어 가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분발의 다짐보다는 슬몃 열패의 기운에 휩쓸리곤 했던 게 사실이다. 가슴으로는 상대방에 공감하면서 머리로는 냉철한 판단을 하면 된다는 것쯤은 익히 알지만 부닥치는 현실은 매번 그렇게 녹록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가 바깥에서 성폭행을 당했는데, 부모는 그저 합의금을 받아 챙기는 데 급급한 상황에서 분노와 무력감 이외에 피해자 국선변호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많지 않았다.
13살 여자아이에게 '조두순'과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질러놓고도 자기 집 강아지에게 밥을 주기 위해, 그리고 주말이면 자신이 자원봉사하러 가는 보육원이며 양로원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구속적부심을 청구한다고 당당히 얘기하는 피의자의 국선변호인이었을 때는 차마 '불구속'이니 '선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이너스 통장에, 대출까지 받아서 돈을 빌려준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변제를 해야 양형에 도움이 된다고 했더니 '그럼 우리 애들은 길바닥에 나앉으라는 거냐'며 버럭 화를 내는 피고인을 마주하고서는 피해자를 대신해 울분을 토하고픈 마음을 애써 억눌러야 했던 국선변호인이기도 했다.
쉼보르스카는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을 알아차리고 공감하고 연민하지만, 그렇다고 리얼리즘에 매몰되어 이에 대한 언급 없이 매우 강렬한 해피엔딩을 맞는 것을 두고 이를 미학적으로 일종의 죄악으로 치부하거나 개연성에 위배된 요소라고 배척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동화는 틈만 나면 훨씬 나은 자신만의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현실을 난처하게 만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