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 전 볍씨 하나, 동아시아 문명을 싹틔우다
◆상산유지박물관과 최초의 벼농사
중국에서는 유적지를 발굴하고 나면 그 장소에 박물관을 세운다. 상산(上山)유지박물관도 유적지에 세운 박물관이다. 상산문화(上山文化, 서기전 9천300년~서기전 7천년)는 2천년 절강성 포강현(浦江县) 상산(上山)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무려 1만1천년 전 신석기인들이 벼농사를 짓던 지역이다. 상산문화는 장강 하류 지역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로 지금까지 약 24개의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상산문화가 형성된 장강 하류 지역에는 고대부터 월족(越族)으로 불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동이족의 난생신화
현재 중국학자들은 장강 하류 유역과 절강, 강소, 복건, 광동 지역에 장강 문화를 이룩한 사람들을 고월족(古越族)이라고 말한다. 춘추시대 월나라 사람들의 선조들이다. 이들을 백월족(百越族)이라고도 부르는데, 몸에 문신하는 풍습이 있었다. 월족에 관한 기록은 '사기'의 '오태백세가'에 나온다. 주나라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태백(太伯)·중옹(仲雍)·계(季) 등 세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 계(季)의 아들 창(昌)에게 천명(天命)이 내렸다는 것이다. 이를 안 태백은 조카 창(昌)에게 왕위를 잇게 하려고 중옹과 함께 형만(荊蠻)의 갔다. 태백이 간 곳이 오(吳)나라 땅인데 지금의 장강 일대로서 원주민들은 머리를 깎고 문신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들 월족들에게도 난생신화가 있었다.
난생신화는 동이족의 신화인데 상(商:은)나라 시조 설(契), 진(秦)나라 시조 대업(大業), 서국(徐國)의 서언왕(徐偃王) 등이 모두 난생신화의 주인공들이다. 하늘에서 현조(玄鳥)가 떨어뜨린 알을 제곡의 차비(次妃) 간적(簡狄)이 먹고 낳은 아들이 설이다. 제(帝) 전욱의 후손 여수(女脩)는 베를 짜던 중 하늘에서 현조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대업을 낳았다. 주나라 시대 회수(淮水) 유역에 있던 서국의 서언왕도 알로 태어났다. 상(商)과 서국은 모두 동이족 국가들이다. 진시황을 낳은 진나라 또한 동이족 전욱의 후손이다. 부여의 동명이나 고구려의 주몽 역시 난생신화의 주인공이다. 난생신화는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형상화 한 것이다.
월족의 난생신화는 서국의 서언왕 신화와 고구려 건국신화와 매우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나라를 세운 인물이 알에서 태어나 버려졌는데 짐승들(하늘)의 보호를 받아 살아남아서 결국 나라를 세운다. 하늘의 자손이 고난을 극복하고 국가를 세우는 것이 난생신화의 핵심이다.
◆장강 하류 월족의 난생신화
월족의 신화를 보자. 염제의 후손인 재래의 딸 구희는 적귀국의 낙용군과 결혼한 뒤 삼[(태(胎)]을 낳았다. 삼은 불길하게 여겨져 들판에 버렸는데 이 삼에서 7일 만에 100개의 알이 나오고 그 알에서 모두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아이들은 모두 용맹하고 지혜로웠다. 구희와 낙용군은 아이들을 50명씩 나누어 기르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구희가 데려간 아들 중 가장 뛰어난 아이가 베트남의 문랑국을 세웠다. 현재 베트남에 전해지는 난생신화다. 신화 속 사람들은 교룡의 해를 피하려고 머리를 깎고 문신을 했다는데 베트남 난생 신화는 월족의 일부가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월족의 일부는 그 지역에 남아 살았고, 일부는 북쪽으로 이동해서 왜(倭)가 된다. '삼국지 위서'의 '동이'전 '왜'조에 "왜인(倭人)은 대방(帶方)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산과 섬을 의지하여 나라와 읍을 이루고 있다. … 남자는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을 했다. … 머리를 깎고 문신을 하여 교룡(蛟龍)의 해를 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난생신화와 단발문신 풍습을 통해 베트남과 왜의 선조는 장강 하류 유역과 절강·강소·복건·광동 지역에 살던 고대 월족, 즉 동이족 계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야생벼에서 재배벼로의 긴 여정
절강성 상산지역에서는 약 1만1천년 전의 탄화된 벼가 발견되었다. 장강 지역에 살던 동이족이 야생 벼를 재배 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지금도 중국의 운남성, 강소성, 대만의 늪지대에서는 몇 알의 벼 낟알만 맺는 야생 벼가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이 벼를 귀화(鬼禾) 라고 부르는데, 벼의 조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야생 벼가 지금처럼 사람이 재배하는 벼가 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약 10만년에 걸친 기간이었다. 고대 사람들은 야생 벼의 씨앗을 모은 뒤 좋은 씨앗만 골라 심고 정성껏 돌보았다. 이런 일을 해마다 반복하면서 점차 재배 벼로 발전하게 되었다.
벼를 재배하면서 장강의 동이족들은 정주(定住) 생활이 훨씬 쉬워졌다. 집에 가축을 기를 수 있었고, 곡식을 담아둘 그릇을 빚게 되었다. 상산문화의 그릇은 입구가 넓고 크며 점차 좁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 평평한 바닥의 접시와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 등이 대표적이다. 상산문화 사람들이 사용했던 토기 조각에는 1만 년 전의 술 발효 흔적이 발견되었다. 토기에 남은 전분입자, 식물규산체, 곰팡이 흔적을 분석한 결과 벼를 이용해 술을 담았던 것으로 확인 되었다. 이는 상산문화 사람들이 벼를 재배하고, 술을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술 양조 증거이다(https://www.pnas.org) 상산 동이족이 술을 우연히 만들었는지 오랜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을 하늘의 자손으로 여겼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 술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조상에게 바치는 중요한 의례 수단이었다.
◆상산문화 사람들의 실제 식생활
상산문화 사람들이 벼를 재배했지만 식량 대부분이 벼는 아니었다. 포강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잣류, 뿌리식물, 마류, 콩과 식물 등 여러 가지 식물을 식량으로 이용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발견된 전분은 도토리 전분이었다. 도토리는 상산문화 사람들에게 벼 못지 않게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발견된 붉은 토기 조각에는 흰색 태양 무늬가 그려져 있다. 이 무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대 동이족들의 태양숭배사상을 보여준다. 태양이 있어야 벼가 잘 자라고 수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태양을 풍요와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다. 상산문화 사람들이 토기에 태양 무늬를 그린 것은 농사의 풍요를 비는 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벼농사의 발전 - 상산문화에서 양저문화까지
장강 유역 문화의 출발점이 되는 상산문화 사람들은 벼를 재배하기 시작했지만, 벼가 충분한 식량이 될 만큼 많이 생산되기까지는 수천 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벼농사 기술도 점점 발전하였다.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 서기전 5천년~서기전 3천300년)시기에 이르면 논을 만들어 벼를 재배하는 논농사가 시작되었다. 장강 유역은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홍수는 강물의 범람으로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하모도문화 사람들은 물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수상가옥과 논농사이다. 논농사가 시작되면서 벼 수확량이 늘어났고, 잉여 생산물도 생겨났다. 이러한 물 관리 기술은 양저문화(良渚文化, 서기전 3천300년~서기전 2천300년) 시기에 더욱 발전하였다. 양저문화 사람들은 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는 관개농업까지 실시하였다. 양저문화 시대는 고대 국가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왕족, 귀족, 장인과 무사, 그리고 평민의 네 계층으로 나뉘어졌다.
◆우렁각시와 농경 사회의 현실
잉여생산물을 차지한 계급이 지배계급이 되고 착취와 억압도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신화나 옛이야기 속에서 비유적인 이야기로 전해진다. 잘 알려진 '우렁각시'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벼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는 여성으로 변한 우렁각시가 총각과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끝나지만, 실제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에는 권력자가 나타나 색시를 빼앗아 가는 비극적인 내용이 더 많다. 이처럼 우렁각시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라기보다 옛 사회의 현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우렁각시 이야기는 특히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채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곳이 평야 지대였다는 점은 예로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권력자의 수탈에 시달리며 살았던 삶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중국에도 우렁각시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와 마주 보고 있는 강소성, 절강성, 복건성 등 장강 하류 지역에 나타난다. 이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 역시 권력자의 착취와 억압이 중심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언제, 어디에서 처음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된 노동과 부당한 착취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이 이야기가 한반도에서 먼저 시작되었는지 장강 하류 지역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지역 모두 벼농사가 발달한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예부터 바닷길을 통해 서로 왕래하던 지역이므로 서로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1만5천년 전의 청주 소로리 볍씨
한반도에서는 상산문화보다 약 4천년이나 더 오래된 볍씨가 발견되었다. 1994년에 충북 청주의 소로리 유적에서 약 1만5천년 전의 볍씨가 발견되었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이다. 이 볍씨는 완전한 야생 벼도 아니고 완전한 재배 벼도 아닌 그 중간 단계의 벼이다. 장강 하류 상산문화의 재배 벼와 소로리 볍씨의 관계가 궁금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정확한 관계를 알기 어렵다.
중요한 사실은 한반도와 장강 하류 지역이 모두 고대 동이족이 살았던 지역으로 아주 이른 시기부터 벼 재배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벼농사를 발전시켰고, 그 결과 벼는 동아시아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쌀을 주식으로 살아가는 동아시아 사람들은 물론 우리들은 먼 옛날 벼를 재배한 선조들과 쌀을 통해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