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섬유 산업의 부흥을 위해 수천억원을 쏟아부던 '밀라노 프로젝트'가 남긴 가장 아픈 흔적은 패션 산업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했던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해산이다. 대구를 패션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를 고려하면 연구원의 해산은 정책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몰락한 밀라노 프로젝트의 첫 결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수년간 이어진 경영난과 노사 갈등, 정부와 대구시의 지원 축소가 겹치며 존립 기반이 약화됐다. 기관이 자생력을 갖추기 어렵고 설립 목적도 달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산업통상부는 2024년 말 이사회를 열고 해산을 결정했다.
패션연은 2010년 한국봉제기술연구소와 한국패션센터를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지난 2000년 11월 설립된 한국패션센터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첫 결실로 꼽힌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추진된 밀라노 프로젝트는 대구경북 섬유산업을 노동집약적 구조에서 탈피시켜 고부가가치 패션·디자인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국가 주도 산업전략이었다. 1999~2003년 1단계 사업에만 6천800억원이 투입되며 17개 세부 과제가 추진됐으나, 종합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프로젝트가 실패한 근본적 배경에는 대구의 산업 환경과 밀라노라는 모델 간의 불일치가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오랜 역사와 예술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감성 중심의 패션 도시인 반면 대구는 소품종 대량 생산과 노동집약적 제조에 특화된 보수적인 기질을 가진 도시였다. 두 도시 사이의 문화적, 정서적 차이를 무시한 채 외형적인 벤치마킹에만 치중한 것이 프로젝트의 괴리를 낳았다.
하드웨어(시설) 구축에 치중한 나머지 소프트웨어(디자인, 브랜드, 인력) 역량 강화에 소홀했다는 점도 뼈아픈 실책이다. 건물과 장비 도입은 단기적인 성과로 보여주기 좋았으나 이를 실제로 운용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낼 디자이너와 마케팅 전문가 육성은 미흡했다.
◆영세화된 산업 기반
대구 섬유산업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현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산업 기반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산업 구조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정책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대구 섬유패션산업 르네상스 전략'에 따르면 대구 섬유패션 산업은 사업체 5천376개로 지역 전체 제조업의 16.6%를 차지하고 있다. 부가가치는 1조3천321억원으로 제조업의 9.5%, 종사자는 2만6천397명으로 15.6%를 차지해 여전히 지역 제조업의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전국적 위상도 아직 유지되고 있다. 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대구 섬유패션 산업의 중심성 순위는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2위이며 산업 비중 역시 3위 수준을 기록해 국내 섬유패션 산업에서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구조적 문제는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봉제·패션 산업 현장에서 인력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산업 생태계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3일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봉제·패션산업 발전과 노동자 권익 향상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토론회에서는 대구 지역 패션·봉제 산업 종사자가 약 5만명 이상에 달하지만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산업을 유지할 젊은 인력은 서울·경기나 부산 등 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숙련 기술 인력의 기술 전수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