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 멈춘 반월당…쇠퇴하는 조류업계, 그래도 새장은 닫히지 않았다

입력 2026-03-08 14:51:36 수정 2026-03-08 14: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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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업계의 명맥을 잇는, 2세대 '현기봉' 씨…아버지 한마디에 현업 내려놓고 조류업
대구 반월당~남문시장 구간, 1980년 전후로 조류업 전성기
"새소리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게 제 역할"

반월당역 인근에서 조류사를 운영 중인 현기봉(69) 씨. 사진은 현 씨가 앵무새를 만지고 있는 모습. 임재환 기자
반월당역 인근에서 조류사를 운영 중인 현기봉(69) 씨. 사진은 현 씨가 앵무새를 만지고 있는 모습. 임재환 기자

지난 6일 대구 중구 반월당역 23번 출구를 나와 30m 남짓 걸어가자 1층짜리 낡은 조류사 건물이 보였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형형색색의 앵무새부터 참샛과의 조류들이 잇따라 소리를 냈다. 가게 앞을 지나던 행인들도 '짹짹'거리는 울음에 발길을 멈추고 눈맞춤을 이어갔다.

한때 반월당역 인근을 가득 채웠던 새소리는 이곳 조류사에서만 또렷하게 들린다. 1세대 조류업자들이 은퇴하면서 관련 업계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어서다.

조류업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가운데 그 명맥을 잇는 인물이 있다. 2년 전 현업을 내려놓고 매일 새장을 여는 현기봉(69) 씨가 그 주인공이다.

현 씨는 오랫동안 조류업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제약회사에서 근무한 뒤 아내와 함께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했다. 안정적인 생업을 이어가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부친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한마디였다. "조류를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였다.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인 그는 2년 전부터 하루 대부분을 새들과 보내고 있다. 현 씨의 선택으로 1960년 문을 연 부친의 조류사도 67년째를 맞이했다.

현 씨에 따르면 반월당역에서 남문시장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1980년대를 전후해 조류 업계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12곳의 조류사·조류공판장이 들어섰고 주말이면 타지역에서 새를 구매하려는 이들과 구경꾼들로 북적였다.

세월은 이 일대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1세대 업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거나 고령으로 은퇴하면서 문을 닫는 가게가 늘었다. 옆집 조류사 역시 91세 업주의 건강 악화로 50년간의 운영을 뒤로하고 셔터를 내렸다. 현재 정상 운영 중인 곳은 현 씨 가게를 포함해 두 곳뿐이다.

그는 "아버지가 1960년부터 조류사를 하면서 이곳이 가장 번성하던 때도, 점점 조용해지던 때도 다 겪었다. 건너편 가게도 언젠가 문을 닫지 않을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했다.

반월당역 인근에서 조류사를 운영 중인 현기봉(69) 씨. 사진은 현 씨가 앵무새를 만지고 있는 모습. 임재환 기자
반월당역 인근에서 조류사를 운영 중인 현기봉(69) 씨. 사진은 현 씨가 앵무새를 만지고 있는 모습. 임재환 기자

현 씨의 가게 안에는 20여종, 300여마리의 새가 지저귄다. 조류는 한 번에 많은 먹이를 섭취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그는 휴일을 따지지 않고 하루 두 차례 모이를 챙기고 있다. 물은 조금만 흐려져도 곧바로 갈아주는 게 원칙이다.

조류 애호가들의 관심은 꾸준하다. 전국적으로 조류시장이 쇠퇴하는 가운데 경북 포항과 김천, 구미 등에서 문의 전화가 잇따른다. 특히 조류 업계의 전성기를 함께 보낸 60~70대의 경우 젊은 시절의 향수를 위해 구매하려는 이들이 많다.

현 씨는 "예전에는 생일 때 새를 선물하는 문화가 있었고, 집 안에서 '짹짹'거리는 새소리를 듣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다만 쇠퇴하는 조류시장의 흐름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려문화로 조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여가 생활이 확산한 점도 업계의 위축을 앞당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현 씨는 '재기'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유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시장 전체를 다시 일으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골목에서 새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