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원룸촌] 구미·경산·포항 '공실 몸살'…월세 면제 고육지책까지 등장

입력 2026-02-23 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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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주요 도시 원룸 공동화 경고등

경북 경산 원룸촌 전경. 매일신문DB
경북 경산 원룸촌 전경. 매일신문DB

경북에서 원룸 공동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가산업단지, 대학로 등의 영향으로 불야성을 이뤘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해 해결책 마련이 급하다.

◆구미 "인동·진미 공실률 가장 높아"

19일 오전 경북 구미시 인동동의 한 원룸 밀집지역. 대부분의 원룸 건물 1층에는 '임대 문의' 현수막과 세입자를 구하는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50년을 넘게 살며 원룸을 운영해 온 A씨는 "예전에는 밤낮 가릴 것 없이 원룸가에 유동 인구도 많았는데 지금은 유동인구도 없고, 많은 원룸이 텅텅 빈 상황"이라고 했다.

인동동과 진미동 일대 원룸촌은 대기업 등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협력업체 직원, 사회 초년생들이 몰리며 빠르게 몸집을 키웠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공실이 늘어난 건물 외벽은 관리가 멈춘 듯 얼룩이 졌고, 일부 건물 앞에는 생활 쓰레기가 방치됐다.

구미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말 기준 시 전체 원룸 공실 가구는 1만323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2024년 4월, 8천727가구)보다 1천596가구 늘어난 수치다. 한때 '공단 배후 핵심 주거지'로 불리며 원룸 밀집도가 높았던 인동동과 진미동의 공실률이 각각 23%, 21%로 지역 내 1·2위에 올랐다.

관리가 어려운 빈집이 늘면서 우범지대화, 불법 쓰레기 투기 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창혁 경북도의원·소진혁 구미시의원(인동·진미동)은 "원룸 공실 문제는 부동산을 넘어 도시 경쟁력과 직결된 사안"이라며 "공단 구조 변화와 인구 흐름을 반영한 주거 재편, 관리·강화 등 종합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경산, 쓰레기가 쌓여 가는 대학 원룸촌

국내 최다 대학을 보유한 교육도시 경산도 원룸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학기를 앞두고 자취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지역 경제의 활력소 역할을 했던 대학가 원룸촌은 정적이 흐르고 방치된 쓰레기 더미만이 골목을 지키는 도심 속의 섬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영동과 임당동, 하양읍 등 대학가 주변에 조성된 원룸은 약 1천800여동에 달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실률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각 대학이 기숙사를 대폭 확충한 데다 대구 지하철 2호선 연장과 광역교통망 발달로 대구에서 통학하는 인구가 급증해서다.

대구대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신축 물량은 아예 끊겼고 거래 수요도 과거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원룸 수요 감소는 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원룸 승계 원합니다'라는 글이 수십 건씩 올라온다. 보증금 20만원에 관리비 포함 월세 37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도 입주자를 찾지 못해 급기야 첫 달 월세를 대신 내주겠다는 고육지책까지 등장했다.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건물이 늘어나면서 쓰레기 불법 투기, 무단 주차, 소음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경산시에 따르면 원룸 밀집 지역 내 민원은 하루 평균 10여 건에 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치안이다. 거주 인구가 줄어든 빈 골목은 성폭력 및 강도와 절도 등 강력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거주 기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더욱이 최근 전국을 강타한 전세 사기 여파와 주택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원룸촌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포항시 북구 양덕동의 한 원룸촌. 2차전지 기업들과 한동대학교에 인접한 이곳에는 각 원룸마다 임대 문의를 알리는 피켓들이 붙여져 있다. 신동우 기자
포항시 북구 양덕동의 한 원룸촌. 2차전지 기업들과 한동대학교에 인접한 이곳에는 각 원룸마다 임대 문의를 알리는 피켓들이 붙여져 있다. 신동우 기자

◆포항 "젊은 사람 썰물처럼 빠져 나가"

경북 포항시 북구 장량동에서 약 10년째 원룸 임대업을 하고 있는 B(52) 씨는 거미줄이 처진 빈집을 청소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월세를 기존보다 내렸지만 12가구 중 5가구는 수개월째 입주 소식이 없다.

B씨는 "인근 영일만일반산단에 2차전지 공장 건설이 한창일 때는 입주 문의가 줄을 섰었다"면서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2차전지 기업들이 고용을 멈추면서 젊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토로했다.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원룸의 특성상 경기 침체로 외지 청년들의 유입이 줄어들고, 아파트 등 주거시설이 대거 시장에 쏟아지면서 입주자를 찾기 더 힘들어졌다. 실제 포항지역 2차전지 기업들은 캐즘현상과 더불어 공장 자동화 설비가 확충되면서 지난해 2분기부터 필수 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규 채용을 멈춘 상태다.

기존 원룸에 거주하던 1인 가구와 사회초년생들이 신축 아파트나 오피스텔로 이동한 대신 이들의 빈자리를 채워줄 신규 청년층의 고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포항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원룸 거주자의 약 15~20%가 최근 2~3년 사이 소형 아파트로 '주거 상향 이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동네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노후 원룸 밀집 지역은 최대 20~30%의 공실률이 발생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