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이달 20일 시정 방침 연설을 마친 뒤, 필리핀 등 아세안(ASEAN) 우방국에 방위 장비를 무상 공여(無償供與)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제시했던 'FOIP(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진화시키고, 중국 정부의 반발을 사고 있는 "(대만 공격은 일본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라는 발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만일 대만-중국 간 전쟁이 벌어질 경우 개입할 뿐만 아니라 동중국해·남중국해 등 석유를 수입해 오는 해상 운송로 '씨 레인(sea lane)'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대(對)중국 견제를 제1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어쩌면 일본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신하는 관리자(管理者) 역할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2차 대전 전범국(戰犯國)으로 그동안 '전쟁할 수 없는' 국가였던 일본이 '보통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진정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일본을 패배시키고 무장해제(武裝解除)시킨 미국 스스로가 일본의 무장과 복귀를 바라는 데다, 지난 8일 다카이치 총리의 집권 자민당이 '평화헌법'을 바꿀 수 있는 개헌 발의선 3분의 2(310석)를 훨씬 넘어선 316석을 확보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걸림돌이 해소됐다.
반면 미국의 최대 동맹 한국은 최근 한·미·일 공중 연합 훈련을 거부한 데 이어, 서해상 미·중 전투기 대치와 관련해 오히려 미군에 항의하는 동맹답지 않은 행동을 벌이면서 미국과 멀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일탈(逸脫)은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는 역효과를 초래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주도권(主導權)을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이 가져가야 할 주도권을 일본에 빼앗기게 된다는 뜻이다.
친중(親中) 이재명 정부의 일탈은 안보와 더불어 경제 위기를 함께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으로 안보와 경제는 늘 같이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일시적 환상에 불과하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는 일본에 짓고 있는 제2공장에서 구형 반도체가 아니라 '3나노'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친대만 정책에 대한 화답이라는 평가이다. 이제 일본은 한국·미국·중국에 이어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네 번째 국가가 된다.
일본은 또 군함(軍艦) 제조 능력과 직결되는 조선업을 육성해 2035년까지 건조량을 2배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중국이 부상하기 전 일본은 세계 최대 조선 강국이었다. 지난해 8월 미쓰비시중공업은 호주 해군의 프리깃함 11척을 수주했다. 인프라가 많이 쇠퇴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일본의 조선 잠재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한국 GDP의 2.3배인 일본의 다카이치 정권은 수년치 예산을 한꺼번에 미리 확보해 안보·경제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사나에 노믹스'를 본격 시동한다.
특히 이런 일본을 세계 최강인 트럼프의 미국이 지원한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며 까불다가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로 '잃어버린 35년'을 보낸 일본이 이제는 미국의 등에 올라타고 재도약(再跳躍)을 노리고 있다. 세계사적 흐름에 엇박자를 놓았던 우리는 100년 전 식민지 수난을 겪었다. 역사의 교훈을 새기지 못한 민족은 잘못을 반복(反復)한다. 그래서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