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참사 23주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 표류하는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 사업

입력 2026-02-12 16: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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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공원법·장사법에 가로 막힌 '수목장'…대책위, 대구시와 갈등도
지하철 참사 계기 건립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2·18 기념공원 명칭 병기 조례 개정안 '유보'
불에 탄 전동차 활용 방안 찾아봐야…대구교통공사 "2·18 안전문화재단과 논의 중"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은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은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이 구조되는 모습. 매일신문 DB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대구 지하철 참사가 23주기를 맞는 가운데, 장기간 답보 상태에 놓인 각종 추모 사업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유족들의 숙원인 수목장 설치는 현행법에 가로막혔고, 참사를 계기로 설치된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추모 사업도 논의가 멈췄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사업들이 오랜 시간 표류하면서 가족을 떠나보낸 상흔도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현행법에 가로막힌 수목장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대책위)는 2008년 약 250억원을 들여 건립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수목장 조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현행법에 발목을 잡혔다.

대책위는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인 만큼, 상징성을 살려 안전테마파크에 수목장 조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테마파크가 팔공산 국립공원 구역에 자리해 현행법상 수목장 설치가 어려운 상황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자연공원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공원구역 내 묘지 설치는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예외적으로 2011년 10월 5일 이전에 사망한 원주민만 허용토록 하고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역시 걸림돌이다. 해당 법령은 수목장을 '산림'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전테마파크 부지는 지목이 '대지'로 되어 있다. 수목장을 조성하려면 지목 변경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는 조경수 위주로 식재되어 있고 나무도 부족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게 대구시의 설명이다. 인근에 마을지구가 형성돼 있는 점도 현실적인 한계로 꼽힌다.

12일 오전 11시쯤 중구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12일 오전 11시쯤 중구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대구지하철희생자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수목장 설치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2.18 기념공원 명칭 병기를 요구했다. 임재환 기자

수목장 설치를 둘러싸고 대책위와 대구시 간 입장 차도 평행선을 달린다. 유족들은 2005년 11월 대구시와 수목장 조성과 관련한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2009년 희생자 192명 가운데 32명의 유골을 안전테마파크 부지에 안치했다. 이에 대구시는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갈등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책위는 수목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며 2024년 4월 대구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고 같은 해 11월 항소도 각하됐다. 법원이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해 본안 판단에 들어가지 않은 채 절차를 종료한 것이다.

지난달 열린 양측 면담에서도 수목장 설치 관련 이면 합의 문제가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해당 합의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 만큼 행정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대구시 관계자는 "수목장과 관련해서 중앙부처에 특례 규정이 가능한지 여부를 물어봤으나 거절당했다"며 "현행법으로선 수목장이 어렵고 유족들에게 다른 추모 사업을 제시해달라고 말씀을 드려놓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민안전테마파크 명칭 변경 난항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고 교육하기 위한 시민안전테마파크 명칭 변경 사업도 십여년째 진전이 없다. 지난 3일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라온 '2·18 기념공원' 명칭 병기 조례개정안은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유보됐다.

해당 개정안은 육정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의원이 현재 명칭만으로는 지하철 참사의 추모 의미를 담을 수없다며 지난 1월 대표발의하면서 추진됐다.

개정안 유보로 심사가 멈추면서 명칭 변경 사업은 지난 8대(대구시의회·2018~2022년)에 이어 9대에서도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오는 6월 전까지 개정안 심사가 재개되지 않을 경우 해당 개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안전테마파크 내 국민성금 8억1천500여만원이 투입돼 조성된 '안전상징조형물'을 추모탑으로 전환하자는 방안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인근 상인회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논의가 끊겼다.

대구지하철 화재로 불에 탄 전동차 일부가 동구 안심차량기지에 보관되어 있는 모습. 대구교통공사 제공
대구지하철 화재로 불에 탄 전동차 일부가 동구 안심차량기지에 보관되어 있는 모습. 대구교통공사 제공

화재로 불에 탄 전동차 가운데 일부만 전시되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지하철 참사 당시 전소된 1079호와 1080호 전동차는 총 12량이었지만, 현재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전시된 차량은 1량에 그친다.

9량은 이미 매각됐고 나머지 2량은 동구 안심차량기지에 보관돼 있다. 이들 차량은 2004년 1월 월배기지에서 안심기지로 옮겨진 뒤, 추모사업추진위원회 논의에 따라 현 위치에 남게 됐다.

이후 별다른 활용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18년 가까이 사실상 방치 상태로 남아있다. 대구교통공사 관계자는 "남은 전동차 두 량에 대해서 활용 방안을 2·18안전문화재단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