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유공자법 6월 전 통과 전망…640명 우선 예우
안동 한일 정상회담 "상징성·품격 충분, 미래 메시지"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을 만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마친 그는 점심 이후에도 이미 잡혀 있던 행사 일정을 소화하고 오는 길이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가량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되기 전 권 장관은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조금 늦어질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린다"며 양해를 구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예의를 먼저 챙기는 '안동 선비'의 모습이었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뒤에도 그는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과거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했던 이력 탓에 피곤한 기색을 예상했지만, 이날 마주한 권 장관의 얼굴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고, 질문이 이어질수록 오히려 말에는 여유가 붙었다. 정치 경력 30년 가까운 베테랑답게 설명은 단정했고, 결론은 분명했다.
권 장관은 지난해 7월 이재명 정부 초대이자 제3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보수 정당에서 3선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이 진보 정권의 보훈 수장을 맡은 선택은 당시 정치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권 장관은 이 선택을 "보훈을 통한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로 규정했다.
-경북 안동 출신이다.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과 이를 통해 형성된 '권오을'만의 가치관이 있나?
▶알게 모르게 안동에서 크면서 '선비'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됐다. 선비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먼저 보는 거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줄곧 이 선비 정신을 마음속 기준으로 삼아왔다. 나는 안동에서 정치하면서 늘 생각했다. 한국 정치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표준이 되는 정치인, 그런 걸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자주 했던 말이 '안동이 바로 서면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였다.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 안동이 바로 선다는 건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정립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다른 가치도 거기에 준해서 서게 된다. 이기고 지는 건 그다음 문제고, 옳다 틀리다부터 바로 서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겠나. 나는 그걸 굉장히 집착했다.
-취임 직후 미국을 방문해 7·27 정전협정 기념식에 참석했다. 보훈외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6·25전쟁은 대한민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외교 자산이다. 22개 유엔 참전국, 198만명의 참전용사는 다른 나라가 가질 수 없는 역사다. 보훈을 매개로 한 외교는 감성적 신뢰를 쌓는 작업이다. 이 신뢰가 있어야 외교·안보·경제 협력도 가능하다.
-독립유공자 발굴과 유해 봉환 사업도 강조하고 있다.
▶현재까지 포상된 독립유공자는 약 1만8천명이다. 국민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외국에 안장된 독립유공자도 220여 위가 남아 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이라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찾아가 모셔오는 게 국가의 도리다.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도 같은 맥락이다.
-취임 이후 가장 크게 느낀 문제의식은?
▶보훈에는 세 개의 큰 축이 있다.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그리고 민주유공자다. 그런데 보훈부에 와서 이한열, 박종철, 전태일 열사가 아직도 법적으로 유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정말 쇼크를 받았다.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87년 헌법 체제다. 6월항쟁으로 만들어진 헌법이다. 그렇다면 그 헌법을 만드는데 기여한 분들이 당연히 국가유공자가 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민주화운동으로 감옥 갔다 왔다, 다쳤다, 사망했다 해서 정부가 돈으로 보상해주는 게 전부다. 그걸로 끝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까지 합치면 민주정부가 15년 넘게 이어졌다. 문민정부까지 합치면 더 길다. 왜 이 법을 안 만들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직무유기다.
-강한 표현이다.
▶그분들은 대통령도 했고, 국회의원도 했고, 장관도 다 했다. 그런데 잊어버린 거다. 나는 그렇게 본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사람들, 지금 만나보면 아무 혜택도 없다. '우리는 뭐냐'는 말을 한다. 그게 정상인가.
-민주유공자법이 만들어지면 어떤 예우를 해야 하나?
▶이미 경제적 보상은 다 끝났다. 지금 필요한 건 명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당신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이 민주사회를 누리고 있다'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보상'이라는 말도 사실 마음에 안 든다.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해 국가가 예우하는 건 시혜가 아니다. 국가의 의무다. 의무를 이행하는 건데 왜 자꾸 보상이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참전유공자 문제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6·25 참전이 없었으면 지금 대한민국은 인민공화국이 됐을 수도 있다. 베트남 참전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빨리 고속도로를 깔고 산업화를 못 했을 수도 있다. 이건 시혜가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할 국가의 의무다.
현재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국가가 제대로 예우하지 않으면 나중에 나라가 위급할 때 누가 나서겠나. 안 나선다. 그래서 보훈은 미래다. 전직 장관이 '모두의 보훈'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놨더라. 아주 잘 만든 말이다. 보훈은 특정 가족만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보험이다.
-민주유공자법의 국회 통과 전망은 어떤가?
▶패스트트랙으로 가 있고, 6월 전까지는 될 거라고 본다. 국민의힘에서 반대하던 조항도 거의 다 뺐다. 부산 동의대 사건, 미문화원 방화 사건 같은 논란 있는 부분도 제외했다. 일단 적게, 약 640명 정도로 출발하자고 했다. 그 다음에는 6월항쟁에 앞장섰던 분들, 민주화추진협의회, 재야 인사들에 대해서도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절로 온 게 아니다.
-이렇듯 보훈 정책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어떻게 보나?
▶보훈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유공자의 명예와 국가의 책임이라는 기준 하나로 봐야 한다. 이 기준이 흔들리면 보훈은 정치화되고, 결국 국가 신뢰가 무너진다.
-경북도의원과 3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공적 영역에서 보낸 시간이 길다. 이를 통해 얻은 삶의 교훈을 후세에 전한다면?
▶반드시 정직해야 한다. 정직하지 않으면 일도 그르치고, 본인 명예도 망가진다. 내가 인사청문회를 할 때도 느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한 번 맞으면 되지 그걸 감추려고 하면 일이 더 커진다. 사실 선거 재판도 많이 받아봤다. 흠을 감추려고 거짓말하면, 또 거짓말이 필요해지고 결국 다 드러난다. 본인만 모르는 거다.
그리고 소통이다. 정치에서 소통은 역지사지다. 내 뜻을 분명히 전하고, 상대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충분히 이야기하면 서로가 서 있는 자리를 알게 된다.
인터뷰를 마치며 권 장관은 다시 한 번 "보훈은 과거를 기리는 일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자 통합"이라고 강조했다. 안동 선비 정신에서 출발한 그의 보훈 철학은, 민주유공자법이라는 구체적인 제도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잇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