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신문 연재 작품인 현진건의 단편 '고향'은 '타향'의 역설이다. 소설 속 화자(話者)는 경성(서울)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기이한 복장의 사내를 만난다. 한·중·일 삼국의 옷을 아래위로 섞어 입은 그 남자의 모습은 식민지 현실과 유랑의 처지를 웅변한다. 처음에는 그의 어쭙잖은 언행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점차 그의 참담한 삶의 여정에 동정심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동양척식회사에 농토를 빼앗기고 만주와 일본을 전전하다가 가족을 잃어버린 후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곳 또한 지난날의 고향이 아니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 혼인 말이 오갔던 여인을 만났는데, 유곽에 팔려갔다가 병든 몸으로 돌아와 일본인 집에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중 화자는 괴로워하는 그 남자와 술잔을 나누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어릴적 배웠던 개사한 신민요였다.
이 소설이 10년만 늦게 나왔더라면 작중 인물들이 '타향살이'를 부르지 않았을까.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고향 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고복수의 '타향살이'는 가사가 짧다. 초장·중장·종장의 3장 형식인 시조나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닌 여느 가요와도 다르다. 그래서 4절까지 있다. 간결한 노랫말이었지만 '타향살이'는 일제강점기 고향을 등지고 떠도는 설움의 원형을 이루었다. 우리 대중가요사에서 '타향'이라는 정서를 낳은 노래였다. 망향의 의식을 개인적 감상이 아닌 시대 정서로 승화시킨 가요였다.
우리 민족사의 질곡은 간단없는 타향살이를 강요했다. 일제의 폭정과 전쟁의 참화 그리고 국토의 분단은 숱한 실향민을 양산했다. 타향에서의 삶이 고달플수록 고향은 가이없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망향의 정서에는 미사여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타향살이'는 노랫말도 가수의 성음도 그저 순박하다. 하지만 그 처연한 계면조의 감성이 겨레의 가슴을 저며들었다.
'타향살이'를 통해 식민지 한국인은 '떠돌며 사는 삶'을 자각했다. 그것은 시와 가요의 경계를 허문 집단적 서정시였다. 단순 반복과 완만한 하강조의 가사와 선율은 회상과 상실의 정조를 중층적으로 쌓아올리며 설움을 녹여 눈물을 자아냈다. 특히 만주에서의 공연은 가수와 관객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다가 기어이 흥건한 눈물 바다를 이루곤 했다. '타향살이'는 겨레의 망향가였다.
'헌 짚신짝 끌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만주에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이 두만강을 건너왔다고 한다. 남쪽 하늘 저 밑이 고향이라고 한다. 시적 화자가 윤동주 개인이 아닌 한반도에서 만주로 내몰린 동포임을 대변한다. 조국을 빼앗긴 망국민에게 어머니 같은 고향은 더 이상 없었다.
김능인이 작사한 '타향살이'는 이같이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에서의 신산한 삶을 절절하게 담았다. 1930,40년대를 살아가는 대중은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타향살이의 연대감을 공유했다. '타향살이'는 망향의 문학이자 망국의 비가(悲歌)였다. 타향살이의 본질적 비극은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 갖힌 것이다. 그것은 시대에 소모된 민중의 자화상이었다.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