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뒤집힌 박원순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입력 2026-02-05 06: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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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9일 고려대에서 수업 준비 중인 박주신 씨. 배지영 기자
2025년 9월9일 고려대에서 수업 준비 중인 박주신 씨. 배지영 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해 재판에 넘겨진 의사 등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심에서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 받은 이후 약 10년 만에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은 4일 양승오 포항세명기독병원 핵의학과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우현 씨 등 5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이장휘 씨에 대해선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문서 배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시작은 2011년으로 돌아간다. 그 해 8월 공군훈련소에 입소한 박 씨는 한 달 만에 허벅지 통증으로 귀가했다. 12월 재검 결과 '추간판탈출증'으로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중증 추간판탈출증 환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박 씨가 멀쩡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부터 박 씨를 둘러싼 병역 비리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박 씨는 이듬해 2월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 MRI 촬영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양 과장 등은 "박 씨 MRI에서 20대 골수로 보기 힘든 패턴이 보인다"며 "박 씨의 MRI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양 과장의 의혹 제기는 2014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졌다. 이에 박 전 시장은 양 과장 등을 공직선거법상 후보자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이들은 2014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2월 1심 재판부는 양 과장 등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양 과장에겐 벌금 1천500만원, 다른 피고인 6명에겐 벌금 700만원∼1천500만원을 각각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체검증을 한다면 박 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의학·과학적 의문 없이 규명할 수 있다"는 양 과장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자료를 토대로 유죄 결론을 내렸다. 검찰이 양 과 등 3명에게 벌금 500만원, 나머지 4명에게 벌금 400만원을 구형한 것보다 더 무거운 형량이었다.

이번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제기한 여러 의혹의 단서 중 상당 부분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 내에서도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된 바 있다"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는 공표 당시 해당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사후에 허위로 밝혀지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의혹의 최종적인 진위 여부는 이후 검찰 수사와 장기간의 법원 심리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엔) 의혹의 진위를 추가로 확인하기까지 시간적·물리적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 씨 등이 MRI 사진의 피사체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거나 추가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2025년 9월9일 인터뷰를 거절하고 자리를 뜨는 박주신 씨. 그는
2025년 9월9일 인터뷰를 거절하고 자리를 뜨는 박주신 씨. 그는 '샌들'을 신고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배지영 기자

◇"불성실한 재판 태도"... 그래도 박주신은 고려대 교수됐다

박주신 씨에 대한 재판은 거의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핵심 증인인 박 씨가 외국에 거주해 신체 검증을 받지 않는 등의 이유로 거듭 지체돼서였다. 법원은 박 씨의 편의를 극진히 봐줬다.

박 씨는 공익근무요원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영국 등지에서 살며 공부를 했다. 2020년 7월 박 전 시장 사망 직후 귀국한 바 있지만 증인신문과 신체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 씨가 출석을 거부해서였다. 법원은 그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증인 신문 소환에 박 씨가 응하지 않자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부터 재판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고려대 공과대학 건축학과 조교수로 임용된 박 씨가 강의를 하기 위해 귀국했기 때문이다. 검찰 측은 법원에 박 씨가 귀국한 사실을 알렸고 법원은 즉시 공판일을 잡았다.

하지만 거듭 지체됐다. 2심 재판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재판 진행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박 씨더러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영상으로 증인신문을 받아도 된다'고 허락하기도 했다. 박 씨는 지난해 4월 서울고법에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피고인이 없는 상태에서만 진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신변보호요청서를 제출해 실제 증인신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비대면 방식인 '영상 재판'으로 증인신문을 진행한다고 했다.

피고인 측은 강력 반발했다. 피고인 측은 "영상 증언은 반대 측의 신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며 재판부에 이의를 제기했다. 법원에 따르면 영상 재판은 증인이 멀리 떨어진 곳 또는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살거나 건강 상태가 안 좋을 때,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때 이뤄진다. 박 씨는 이미 귀국해 서울에서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게다가 재판부는 지난해 5월23일엔 검사와 피고인 양측에 증인신문사항을 '사전 제출'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 미리 재판부에 내라는 것이었다. 피고인 측이 이의를 신청해 재판은 지연됐다.

피고인 측은 "피고인 중에는 핵의학 전문의와 치과의사가 포함되어 있다. 박 씨의 신체 상태나 과거 제출된 MRI 영상의 진위 여부를 현장에서 직접 관찰하며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영상으로는 박 씨의 신체 상태나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없어 실질적인 반대신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 박 씨는 재판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실질적인 증인신문이나 신체검증을 받은 적 없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영상 증언은 적법한 절차이며 재판의 불공정성을 뒷받침할 객관적 사유가 없다"고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사재판에서 증인신문은 꽃이다. 증인신문기일에 신문하기 직전 즉석 제출하는 게 원칙"이라며 "서울에서 멀쩡히 근무하고 있는 사람에게 영상재판을 허가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반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했다.

매일신문은 이에 대한 입장을 들으려 지난해 박 씨가 귀국한 뒤부터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고려대 측은 "교수 연구실에 전화기를 두냐 안 두냐는 교수 선택 사항인데 박주신 교수 연구실에는 전화기가 없다. 통화가 불가하다"고 했다.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가운데 연구실에 전화기가 없는 건 박 씨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