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모네와 인상주의: 근대적 지각 체계의 탄생

입력 2026-01-29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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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드 모네의 1872년작 〈인상, 해돋이〉
끌로드 모네의 1872년작 〈인상, 해돋이〉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길게 놓고 볼 때, 회화의 세계관 자체를 근본에서 바꾸어 놓은 결정적 단절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가운데 두 지점을 꼽으라면, 하나는 14세기 초 트레첸토 시기의 조토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상주의일 것이다.

조토는 비잔틴 회화, 이른바 마니에라 그레카의 관습을 해체하고, 성상 중심의 중세적 이미지 체계를 넘어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를 하나의 공간적 장면으로 구성하는 새로운 시각 체계를 열어 보였다. 그의 등장은 중세적 세계관의 종언이자 르네상스적 회화 공간의 개막이었다.

이로부터 수 세기가 지난 뒤, 인상주의는 또 한 번 회화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킨다. 흔히 인상주의를 "빛을 그린 회화"라고 말하지만, 그 혁신은 단순히 빛을 묘사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어떤 회화도 빛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의 '빛'을 그리고자 했는가에 있다.

끌로드 모네의 1872년작 〈인상, 해돋이〉는 이 전환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작품에 그려진 것은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 풍경이지만, 모네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항구라는 대상 자체가 아니다.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를 때 세계 전체가 하나의 색채적 분위기로 변모하는 그 순간, 대기에 스며든 빛과 색의 떨림, 곧 경험의 상태이자 지각의 장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주제였다.

여기서 중요한 미술사적 전환이 발생한다. 즉, 화면에 그려진 대상과 화가가 그리고자 한 회화의 궁극적 동기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게 된 것이다. 회화는 더 이상 어떤 사물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가 하는 지각의 조건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한다. 이는 회화가 대상을 그리는 매체에서 지각의 방식을 사유하는 장으로 전환되는 지점, 곧 근대적 지각 체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물론 모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아직 추상미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형상 없는 그림이 상상되기 어려웠던 시대에, '감흥'이나 '분위기'를 그리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재현 회화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 한계를 모네보다 먼저 예감했던 이들이 영국의 존 컨스터블과 윌리엄 터너였다.

컨스터블이 자신이 경험한 대기의 상태와 날씨, 빛의 조건을 충실히 옮기려 했다면, 터너는 후기으로 갈수록 형태를 해체하고 색과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상이 거의 흔적으로만 남는 회화에 이르렀다. 그의 그림에서 중심에 놓인 것은 사물이 아니라, 지각 그 자체의 역동성이었다.

보불전쟁을 피해 1870~71년 영국에 체류했던 모네는 이들의 회화를 직접 접하며 결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사물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세계가 어떻게 주어지는가라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해답을 그는 빛에서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빛 그 자체가 아니라 빛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상태에서였다.

그럼으로 모네의 회화는 분명 빛을 그리고 있지만, 빛을 그리기 위해 그린 회화는 아니다. 그것은 빛을 통해 드러나는 경험의 현재성, 세계가 지금 여기에서 출현하는 방식을 그리고자 한 회화였다. 조토가 성상적 이미지 체계로부터 회화를 해방시켰다면, 모네와 인상주의는 재현적 대상성으로부터 회화를 해방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