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를 차주에 전가했다"…LTV 담합, 은행 관행에 제동

입력 2026-01-21 15: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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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영업 정보 교환해 경쟁 회피"…공정위, 개정 공정거래법 첫 적용
"피해 금액 산출은 현실적으로 어려워"…경쟁 제한 효과에 방점

문재호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이 21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에서 4대 시중은행의 정보교환 담합 행위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밝히고 있다. 공정위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4개 대형 시중은행이 부동산 담보인정비율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 담보대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한 행위에 대해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과징금 총 2,720억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문재호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이 21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에서 4대 시중은행의 정보교환 담합 행위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밝히고 있다. 공정위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4개 대형 시중은행이 부동산 담보인정비율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 담보대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한 행위에 대해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과징금 총 2,720억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4대 시중은행에 과징금 2천720억원을 부과했다. 부동산 담보대출의 핵심 조건인 담보인정비율(LTV)을 관행처럼 서로 공유하며 경쟁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그 부담을 금융 서비스 이용자에게 고스란히 전가해서다.

문재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4개 시중은행이 부동산 담보대출의 중요한 거래 조건인 LTV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활용해 경쟁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LTV는 대출가능금액, 대출금리, 상환 조건, 대출기간 등 담보대출 거래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거래 조건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나·국민·신한·우리은행 실무자들은 최소 736건에서 최대 7천500건에 이르는 담보인정비율 정보를 장기간 수시로 교환했다. 문 국장은 "실무자들이 직접 만나 문서 형태로 정보를 받아온 뒤 엑셀 파일에 입력하고 문서는 파기했다"며 "담당자가 교체되더라도 정보교환이 중단되지 않도록 전·후임자 사이에 인수인계까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교환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활용했다. 문 국장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부동산에 적용되는 LTV가 다른 은행보다 높으면 대출금 회수 리스크를 많이 부담하게 되므로 낮췄고, 반대로 낮으면 고객 이탈을 우려해 높였다"면서 "4개 은행의 LTV가 장기간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경쟁 회피와 함께 차주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문 국장은 "LTV가 낮아지면 차주가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이 줄어들고, 원하는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이용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소상공인은 신용대출에도 한계가 있고 추가 담보 제공도 어려워 담보인정비율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2023년 기준 4개 은행의 평균 담보인정비율은 정보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은행보다 7.5%포인트(p) 낮았다. 공장·토지 등 비주택 부동산에서는 격차가 8.8%p로 더 컸다. 문 국장은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약 6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4개 은행의 담보인정비율이 유사하게 유지되면서 차주들의 거래은행 선택권이 제한됐다"고 말했다.

과징금 산정과 관련해 문 국장은 "관련 매출액은 담보대출로 얻은 이자수익을 기준으로 산정했다"며 "2022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의 관련 매출액은 총 6조8천억원"이라고 밝혔다. 과징금은 모두 2천720억원으로, 가중·감경 사유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정위는 소비자 피해 규모를 특정하진 않았다. 정보교환 담합은 가격을 직접 합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쟁 자체를 제거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개별 차주가 얼마의 피해를 봤는지 산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신 "경쟁자들이 중요한 영업 정보를 교환해 경쟁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유사한 수준으로 수렴시킨 것 자체가 경쟁 제한"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2021년 12월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이 신설한 '경쟁제한적 정보교환 담합' 규정을 처음 적용한 사례다. 문 국장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가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건"이라며 "금융권 전반으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