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최장 수감 기록… 문경 출신 박열 의사 52주기 추모식 봉행

입력 2026-01-20 15: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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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폭살기도 혐의 22년 2개월간 옥고…일본인 독립유공자 부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도 재조명

가네코 후미코 여사와 박열 의사. 박열의사 기념관 제공
가네코 후미코 여사와 박열 의사. 박열의사 기념관 제공

경북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제52주기 추모식이 지난 17일 오전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에서 성황리에 봉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열 의사의 손자를 비롯한 유족과 신현국 문경시장, 이정걸 문경시의회 의장, 박영서 경북도의원, 이규봉 문경경찰서장, 박인원 전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역 안보·보훈·유림 단체장과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박열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렸다.

식전 행사로는 박열 의사의 생전 애창곡인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이 문경문화원 하모니카 동아리의 연주로 울려 퍼지며 엄숙한 추모 분위기를 조성했다.

박열 의사는 190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6년 히로히토 일왕 폭살 기도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무려 22년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최장 수감 기록으로,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투쟁한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박열 의사는 재일교포의 권익 신장을 위해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조직해 초대부터 5대까지 단장을 역임하는 등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북한으로 강제 피랍됐으며, 1974년 1월 17일 향년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박열 의사와 함께 히로히토 일왕 암살을 시도했던 부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도 재조명됐다.

지난 17일 열린 박열 의사 52주기 추모식 장면
지난 17일 열린 박열 의사 52주기 추모식 장면

가네코 후미코는 2018년 사후 92년 만에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그녀 역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26년 7월 23일, 23세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의문사했다. 당시 일본 당국은 자살로 발표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묘는 남편 박열 의사의 고향인 문경시 문경읍 팔영리에 안장됐다가, 2003년 문경 마성면에 박열의사기념공원이 조성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장됐다.

서원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올해 제52주기 추모식은 박열 의사의 유족이 직접 참석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됐다"며 "박열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문경 발전과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추모사에서 "박열 의사는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지켜내며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