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예술기행] 프랑크푸르트

입력 2026-01-28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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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전경. 게티이미지
프랑크푸르트 전경. 게티이미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삼덕동 아주머니가 내게 독일 유학 의향을 물어왔다. 아주머니는 고종사촌인 어머니와 절친하여 평생 친정처럼 우리 집을 드나들어 한식구와 다름없이 지내오던 터였다. 그 시가 쪽 누군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크게 성공하여 고향 청년 한 명에게 유학비 전액을 대겠으니 추천하랬던 모양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저어하셨지만 나는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보다 세 살 많은 아주머니의 딸이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유학을 갔다. 그것이 퍽 미안했던지 먼 인척이지만 어릴적부터 친했던 그 언니는 귀국할 때마다 마비스 안경테며 프릴이 잔뜩 달린 블라우스 등을 내게 선물로 주곤 했다.

1980년대 초, 온 국민이 분데스리가에 열광하며 차붐을 외치던 때였다. 그리하여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어느 도시보다 우리에게 친숙했고, 나는 헤르만 헤세의 '새는 알에서 깨어난다.(새는 투쟁하여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란 문장이나 괴테, 쉴러, 니체와 80년대 폭발적으로 번역되었던 루이제 린저, 하인리히 뵐 등 독일문학에 푹 빠져 있던 때였다. 아마도 당시 소녀들의 우상 같았던 번역가 전혜린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사고도 지출하지 않는 나무를 나는 증오한다. 경멸한다.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다. 저열한 충동으로만 살고 거기에도 만족하지 않는 여자를 나는 증오한다. 나무는 하늘 높이 높이 치솟고자 발돋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에까지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것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유학 간 뮌헨대에서 슈바빙을 지독한 낭만으로 묘사한 '불꽃처럼 사랑하고 사랑하며 죽어'간 전혜린의 문장들을 필사해 절친과 교환일기를 썼던 기억도 난다.

◆초고층 빌당과 중세 구시가지가 공존하는 도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전면. 게티이미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전면. 게티이미지

프랑크푸르트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는 아, 탄성을 질렀다.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한 유럽 타도시들에 비해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것이 서울처럼 푸근했던 탓이다. 어쩌면 '한강의 기적'과 '라인강의 기적' 또는 '브란트 총리의 나치 만행에 대한 사과' '식민 통치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 없는 일본' 등이 겹쳤거나, 고건축물보다 빌딩에 익숙한 도시에 대한 나의 통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유럽 교통 허브답게 웅장하고 붐볐다. 톰 하디를 닮은 스킨 헤드족들이 왁자하게 지나가고, 검은 옷을 입은 집시 여인이 깊은 눈빛으로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1938년 수정의 밤(Kristallnacht, 피해자 입장에선 pogromnacht(학살, 폭동의 밤)이라고 부른다), 이 중앙역 광장 앞도 횃불을 든 나치들이 유대인 상점의 모든 유리를 깨기 위해 몰려다녔을 것이다. 독일에서 여행자는 어쩔 수 없이 나치즘과 히틀러를 이렇게 늘 떠올리게 된다. 이곳 중앙역 역사(驛舍) 16번 플랫폼이 집단 추방되는 유대인들을 싣고 나가던 기차가 운행되던 곳이라고. 독일 곳곳의 역은 홀로코스트의 시발점인 셈이다. 이 부근은 우범지대라 혼자 다니면 위험하단 귀띔에 문득 한기가 든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과 유럽 금융의 중심지이다. 뢰머광장을 향해 가는 길에 노란 별(유대의 별인가?) 12개가 달린 거대한 유로 타워가 서 있다. 지금은 다른 건물로 옮겼지만 원래 유럽 중앙은행 본사가 있던 자리다. 덕수궁과 종각이 빌딩들 사이에 고즈넉한 것처럼 독일 전통양식의 낮은 중세 목조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를 산책하듯 걷는다. 약간 흐린 전형적 유럽 날씨, 트램버스가 커브를 돌며 지나가고 검은 이끼가 낀 건물들을 지나다 보면 물은 흐르지 않지만 여신의 석상이 내려다보는 분수도 만난다. 그리고 뢰머광장, 작고 네모난 돌이 촘촘이 깔린 광장 한켠에 괴테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다.

괴테 동상. 게티이미지
괴테 동상. 게티이미지

◆프랑크푸르트, 괴테의 도시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 근심에 찬 밤들/ 잠자리에 앉아 울어 본 적 없는 자/

그대들을 모르겠지/ 너희 천상의 힘들은// 너희는 우리를 삶 속으로 이끈다/ 너희는 가련한 자를 죄짓게 만들고/ 너희는 그를 고통 속에 내버려둔다/ 모든 죄는 지상에서 다 갚아버리라며' 1796년 괴테가 쓴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속 하프 켜는 노인이 천상의 신들을 도발하는 장면에 나오는 시다.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괴테는 작가이자 연극감독, 도서관장, 자연과학자 그리고 작센 바이마르의 재상을 지낸 정치가이기도 했다. 1749년 8월 28일 프랑크푸르트의 귀족 못지않은 유복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지대한 교육열로 어려서부터 배운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이디시어 등을 구사하며 25세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전 유럽에서 명성을 얻었다. 이어 26세부터 쓰기 시작해 죽기 직전인 1832년, 83세에 완성한 '파우스트'는 시간을 초월하는 불멸의 명작으로 꼽힌다.

괴테
괴테

뢰머광장의 독일식 건물들과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 평온한 느낌의 괴테 하우스는 2차세계대전 때 폭격당해 다시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라 했다. 소년 괴테가 뛰어다녔을 작은 정원을 지나 박물관을 먼저 둘러봤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의 초상화와 4세 때 할머니에게 선물받았다는 인형극 상자, 가족들과 친지들의 초상화, 원고 초안과 편지 등속이 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나와 작은 나무계단이 있는 문을 지나면 그가 생전에 사용했을 것 같은 물건들이 그대로 전시된 생가(生家), 괴테하우스가 나온다. 이곳 또한 폭격에서 살아남은 물품들과 또는 철저히 고증했을 법한 동시대 가구와 장식품들, 가족 친지들의 초상화들이 가득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지향이 있는 한, 살아 있는 한), 방황하느니'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다.'와 같은 파우스트의 명문장들을 읽다 보면 셰익스피어, 단테와 더불어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한 사람' 항렬에 반드시 들어가는 사람이란 걸 다시 인정하게 된다. 그의 저작은 과연 한 사람이 다 쓴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분량이다. 어느 분석가는 괴테가 총 9만6천 단어를 작품에 사용했단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는데, 평생 지기(知己)로 지낸 실러와 주고받은 서간문이나 일기의 분량도 어마어마하다.

그 외에도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색채학, 1천 점이 넘는 그림, 거기에 슈베르트와 슈만, 리스트를 거쳐 20세기 루빈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악가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음악성까지, 도저히 한 사람이 이룬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업적에 후세인들은 그저 찬탄을 금치 못할 따름이다. 캄파냐의 괴테 상을 거대하게 세워놓은 공항 카페에서 사과 주스를 마시며 프랑크푸르트는 괴테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새삼 부럽게 깨닫는다. '다음 독일 여행 장소: 바이마르, 3일'을 수첩에 적으며 파란색 도자기 주전자에 담긴 사과 와인을 못 마셨구나, 또 깨닫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