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창궐
이치호 미치 지음/ 비채 펴냄
불과 3년 전까지도 우리는 매일 아침 확진자 숫자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마스크는 신체의 일부가 되었고, 사람은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텅 빈 거리와 폐쇄된 가게들…. 그 단절의 시대가 남긴 흉터는 지금 어디쯤에 숨어있을까. 제171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치호 미치의 소설 '창궐'은 바로 그 질문의 틈새를 잔인하게 파고든다.
동인지와 라이트노벨, 장르문학의 현장에서 무려 70여 권의 책을 펴내며 '이야기의 근육'을 단련해온 저자는 일반 문학 데뷔 3년 만에 일본 최고의 권위라는 나오키상을 거머쥐었다. 이 소설의 원제는 '쓰미데믹(Tsumidemic)'이다. 죄를 뜻하는 '쓰미'와 팬데믹을 합성한 이 단어는,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보다 더 무섭게 번져나가는 인간 내면의 '죄의식'을 정조준한다.
소설은 우리가 겪었던 팬데믹의 풍경을 기이한 환상과 범죄의 코드로 변주하며 시작한다. 첫 번째 단편 '날개가 다른 새'에서 주인공 유토는 이자카야의 호객꾼이다. 거리두기로 인해 인적이 끊긴 골목에서 전단을 돌리던 그는 화려한 금발 여성을 만난다. 놀랍게도 그녀는 중학생 때 이미 죽었던 친구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와 건네는 술잔, 그리고 밤의 세계에 관한 은밀한 이야기들. 작가는 사실과 거짓,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며 독자를 혼란 속에 밀어 넣는다. 이는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느꼈던 비현실적인 감각, 즉 어제까지의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공포를 완벽하게 은유한다.
이어지는 이야기 '로맨스☆'는 배달 앱이 지배했던 우리의 일상을 소름 돋는 심리극으로 뒤바꾼다. 우연히 마주친 미남 배달원을 다시 보기 위해 매일 같이 음식을 주문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집착은 처음엔 사소한 설렘처럼 보이지만 점차 광기로 변한다. 결국 그를 독점하기 위해 불법적이고 위험한 수단까지 서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단절된 사회에서 결핍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소설은 코로나 시기 한국에서도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마녀사냥과 혐오의 정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잔물결 드라이브'에서는 전염병으로 직장과 일상을 잃고 막다른 길에 몰린 이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저자는 팬데믹 당시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며 벌어졌던 온라인상의 집단 린치, 즉 일종의 오락이 되어버린 규탄의 문화를 꼬집는다. 아울러 유령이 돼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는 여고생의 추리극 '반딧불이'부터, 딸의 임신을 통해 우생학적 폭력과 전쟁의 공포를 연결하는 서사 '축복의 노래'까지 쉼 없이 달려간다.
저자의의 문장은 유려하지만 차갑다. 그는 인물들이 저지르는 비윤리적인 선택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로테스크하게 빛나는' 욕망을 응시할 뿐이다. 마치 현미경으로 바이러스의 증식 과정을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작가는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밑바닥에 깔린 이기심과 애정, 그리고 위태로운 연대를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우리는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얼마나 많은 타인을 손가락질했던가. 나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았던가. 책 속의 문장처럼 "왕따를 보고 못 본 척하는 것도 같은 죄"라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쓰미데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지금의 사회를 사는 지금의 나를 위해 쓴다"고 했다. 그 말처럼 이 책은 박제된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을 떠돌고 있는 불안과 욕망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이제 재난은 끝났을지 몰라도 그로 인해 변해버린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다. 자극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위로를 원한다면 이치호 미치가 설계한 이 기이한 도시로 걸어 들어가 보길 권한다. 단,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당신이 믿었던 평온한 일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280쪽, 1만7천8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