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호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고개는 만남과 이별, 기억과 현재가 교차하는 자리다. 정선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만날고개에서 만나요'는 바로 그 경계에서 한국 현대사의 상흔과 시대가 외면해 온 약자들의 삶들을 시적 언어로 끈질기게 다시 불러낸다.
이번 시집에는 총 60편의 시가 실렸다. 조선인 여공들의 한을 노래한 '조선인 여공의 노래', 제주 다랑쉬굴의 처절한 공포를 재현한 '길고 긴 하루', 여순항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이 묻힌 만성리 골짜기를 추모하는 '만성리 기찻길' 등은 한국 현대사에 남겨진 집단적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기억의 책임을 묻는다.
역사적 시편과 더불어 개인적 서정 역시 시집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고향 서천을 배경으로 한 '서천꽃밭'에는 타향살이의 고단함과 귀향의 그리움이 담겼고, '순하디 순한 문장들', '매미 울음소리는' 등에서는 생의 시간과 윤회적 삶에 대한 사유가 깊게 스며 있다. 이처럼 시집은 집단의 역사와 개인의 삶이 맞물리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자연과 생태 문제에 대한 시선 또한 두드러진다. '씽크홀'과 '바닷물이 들어오는 교실'은 도시의 욕망과 기후 위기가 어떻게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위협하는지를 드러내며, 공통체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조용히 제기한다. 140쪽, 1만3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