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윤정훈 기자
대학 시절, 시험을 앞두고 반드시 하는 일이 있었다. 강의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하나하나 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귀찮고 고된 일이었지만 수업 중 교수의 말 한마디가 시험 문제로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혼자 하기엔 양이 많아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날짜별로 나눠 정리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요즘 이 이야기를 하면 '화석'을 넘어 '고생물'(古生物) 취급을 당할 테다.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의 급격한 진화와 함께 대학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AI는 이제 강의 녹취 정리, 예상 문제 추출, 자료 조사 등 대학 생활 전반에 활용되는 일상적 학습 도구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AI가 실제와 다른 정보를 사실처럼 제시하는 이른바 '할루시네이션'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 사이에서는 여러 AI를 동시에 활용해 답변을 비교·검증하는 방식마저 보편화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교수들 역시 AI 활용을 전제로 한 새로운 평가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수업에서는 AI 사용을 금지하기보다 활용 사실을 명시하도록 하거나 토론·발표·퀴즈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지만, 이는 소규모 강의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상당수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을 글로 전개하는 리포트형 과제가 핵심 평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제들마저,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아이디어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리포트 작성을 통째로 AI에 맡기면 티가 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한 지역 교수는 웃으며 "30만원짜리 쓰면 사실상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학생들의 사고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제시한 답변을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사고의 출발점 자체를 AI에 맡기는 학습 방식이 반복될 경우 사고의 깊이와 창의성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리포트를 쓰면서 스스로 자료를 해석하고 논리를 구성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다. 특히 기초 개념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AI를 사용하는 학생일수록 결과물은 그럴듯해 보여도 실제 이해도는 낮아지는 '학습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학 교육의 본질을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다.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 교수로 알고리즘 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칼 뉴포트는 최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우리는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2년 전후를 기점으로 인간의 뇌는 기존의 지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됐고, 지능을 성장시키는 행동 자체를 하지 않게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AI까지 겹친 지금부터는 우리의 멍청화(?)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AI를 상대로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는 현실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대학이 '뇌를 위한 헬스장'을 마련해야 한다. 농경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오며 신체 활동의 기회가 줄어든 인간이 헬스장을 찾듯, 사고력을 단련하고 논리력을 확장하기 위한 훈련의 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체계가 대학 교육의 일부로 정착돼야 한다. 그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교육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윤정훈 기자 hoony@imae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