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석민] 황금 열쇠의 배신

입력 2026-01-01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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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 선임논설위원
석민 선임논설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2년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공공 부문이나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가리켜 '황금(黃金) 티켓 증후군'이라고 했다. 영미권에서 황금 티켓은 모든 것을 이루게 해 주는 만능열쇠와 같은 수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황금 열쇠가 행운과 축복의 상징이 된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강경화 주미 대사와 환담(歡談)하며 "이(재명) 대통령을 많이 좋아한다. 10월 방한 때 매우 귀한 선물을 받았다"며 5개 제작된 백악관 황금 열쇠 중 마지막 1개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호날두 축구 선수가 황금 열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는 친절한 설명이 추가됐다.

대통령실로서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이 한껏 올라가는 기분 좋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5개뿐'이라던 백악관 황금 열쇠는 백악관을 방문한 각국 정상들과 기업인, 스포츠 스타뿐만 아니라, 2020년 4월 16일 백악관에 초청된 트럭 운전사 4명에게도 선물된 것이 밝혀졌다. '특별한 한정품'이 아닌 그냥 기념품이었던 것이다. 이걸 미처 확인하지 못한 국내 언론들은 '트럼프가 이 대통령에게 준 마지막 황금 열쇠'라며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비서실장의 거짓말이 언론과 국민을 속인 셈이 됐다. 물질주의에 빠진 어떤 사람들은 트럼프의 황금 열쇠가 사실은 구리계 합금으로 만든 '짝퉁'이라는 데 더 큰 배신감(背信感)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최대 1㎏ 정도 되어 보이는 사진상의 황금 열쇠를 순금으로 만들 경우 억대의 초고가 기념품이 되는 탓에 은근히 부러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트럼프 방한 당시 진짜 황금으로 만든 신라 금관을 선물받은 것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에게만은 진짜 황금 열쇠를 선물해도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선물은 정성과 마음이 핵심이다. 5개뿐인 특별 한정품이 아니어도, 진짜 황금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대통령실이 괜히 과대포장(誇大包裝)하려다가 '짝퉁' 이미지만 강화시킨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