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 반성한다더니 '호갱 영업'?…쿠팡, '꼼수 보상안' 논란

입력 2025-12-29 10:25:03 수정 2025-12-29 10: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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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 중 4만 원은 고가 명품·여행 상품 유도용… "배보다 배꼽이 더 커"
현금 보상 아닌 '매출 증대' 꼼수, 고객 우롱하는 '조삼모사'식 대처

쿠팡 구매이용권 보상안
쿠팡 구매이용권 보상안

"역대급 규모의 보상안이다", "연간 순이익의 4배가 넘는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초유의 사태 앞에서 쿠팡이 내놓은 자화자찬식 보상안 수식어다.

쿠팡은 29일, 1조 6,850억 원 규모의 고객 보상안을 발표하며 '고객 신뢰 회복'을 외쳤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이는 피해 보상이 아니라 3천만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판촉 행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1조 6천억'이라는 숫자의 눈속임

쿠팡은 이번 보상안이 기업의 연간 순이익을 훨씬 상회하는 천문학적 금액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1조 6,850억 원이라는 숫자는 전 국민이 쿠팡이 정한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해 쿠폰을 100% 사용했을 때나 성립하는 '가상의 숫자'다.

기업 입장에서 현금 유출이 발생하는 직접 보상이 아닌, 자사 플랫폼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구매이용권(쿠폰)' 지급은 회계상 비용 처리 방식이 다르다. 오히려 고객이 쿠폰을 쓰기 위해 지갑을 열게 만듦으로써, 사상 최악의 보안 사고를 '매출 펌핑'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 5만 원 준다더니… "4만 원 쓰려면 수십만 원 결제해라"

보상안의 세부 내역을 보면 기만적인 태도는 더욱 명확해진다. 총 5만 원의 보상금액 중 실생활에 즉시 도움이 되는 쿠팡 전 상품 및 쿠팡이츠 쿠폰은 단 1만 원(각 5천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4만 원(80%)은 '쿠팡트래블'과 명품 버티컬 서비스인 '알럭스(R.Lux)'에 배정됐다. 문제는 이 두 카테고리가 2만 원짜리 쿠폰 한 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행 상품이나 명품 화장품·의류를 구매하려면 최소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의 지출이 필수적이다. 결국 피해 고객이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쿠팡의 고가 라인업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피해 보상이 아니라, 쿠팡이 주력하고 있는 신사업(여행, 명품)에 고객을 강제로 유입시키려는 '미끼 상품' 투척에 가깝다.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주부 박 모씨(42)는 "개인정보는 다 털렸는데, 보상받으려면 비싼 여행 상품이나 명품을 사라는 것이냐"며 "5천 원짜리 생색내기 쿠폰 던져주고 2만 원 할인을 미끼로 비싼 물건을 팔려는 장사속에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진정성 없는 '조건부 사과', 신뢰 회복은 요원

해롤드 로저스 임시 대표는 "책임을 통감하며 고객 중심주의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정한 고객 중심주의라면 사용처가 극히 제한되고 고가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건 없는 포인트 지급이나 실질적인 피해 구제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쿠팡 측은 이번 규모가 물류 투자비의 30%에 달하며 SK텔레콤 사태 때보다 3배 이상 크다는 점을 참고자료로 배포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보상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질'이다.

고객의 내밀한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해 유출시킨 대가로 자사의 물건을 팔아주라는 식의 보상안. 이는 국민을 소비의 도구로만 보는 거대 플랫폼의 오만함이 빚어낸 촌극이다. 1조 6천억 원이라는 허울 좋은 숫자로 포장된 이번 보상안은, 쿠팡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는커녕 '국민 기만 기업'이라는 낙인을 찍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