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홍준표] "환경은 외면한 채 터만 옮길텐가"

입력 2026-01-01 15: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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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세종본부 차장
홍준표 세종본부 차장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자녀 교육에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고사다. 터를 옮긴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잘못된 환경에서는 어떤 노력도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경고가 담겼다. 대구경북(TK)신공항 논의를 보노라면 이 고사가 떠오른다. 논의의 초점이 '어디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에만 쏠려 있어서다. 공항 위치와 규모를 따지기 전에 현재 TK 하늘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실은 참담하다. 김해국제공항은 지방공항 최초로 국제여객 1천만명을 돌파했고, 청주국제공항도 연내 500만명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반면 대구국제공항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올해 국제선 이용객은 141만5천888명으로, 2019년 250만명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전국 항공 수요가 빠르게 살아나는 상황에서 대구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침체가 갖는 무게다. 대구공항의 부진은 한 공항의 실적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14조원이 투입되는 TK신공항 건설의 대의명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사안은 더욱 무겁다. '지역민에게 더 넓은 하늘길을 열어준다'는 논리는 현재 공항에서도 국제선 수요를 제대로 끌어오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기 쉽다. 도심 공항을 군위·의성으로 이전할 경우 접근성이 떨어져 이용객이 더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힘을 얻는 이유다.

대구공항이 주저앉은 원인은 비교적 분명하다. 국제선 노선 회복이 더딘 데다 활주로가 짧아 대형 항공기 운항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로 장거리 노선이 없다. 김해공항이 중앙아시아와 유럽, 미주 노선까지 시야를 넓히는 동안 대구공항은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 동남아 단거리 노선에 머물러 있다. 고빈도(高頻度) 노선으로 수도권 수요까지 흡수한 청주공항과의 격차도 뚜렷하다. 대구공항은 인근 지역 수요조차 지키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구시의회는 국제선 운항 재정 지원을 핵심으로 한 공항 활성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도 매일신문 지적(2025년 12월 24일 보도)에 올해 항공사 지원 예산을 작년보다 약 63% 늘린 8억5천만원으로 편성했다. 그러나 제도 손질과 보조금 확대만으로 한계는 분명하다. 보조금만으로 항공사가 노선 전략을 바꾸지는 않는다. 잠들어 있는 운수권을 끌어오고, 항공사가 계산기를 두드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행정의 몫이다.

그럼에도 행정의 시선은 여전히 '신공항 이후'에 머물러 있다. 터미널 면적과 활주로 길이 같은 하드웨어 논의는 넘치지만 지금의 공항을 어떻게 살릴지에 대한 전략은 흐릿하다. 대구공항 활성화와 TK신공항 건설은 따로 놓을 수 없는 문제다. 현재 공항을 살리지 못하면 신공항 건설의 명분이 약해지고, 신공항이 표류할수록 낡은 공항으로 버티며 소음을 인고(忍苦)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해법은 분명하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단일 자치단체 차원을 넘어 광역권 수요를 묶는 공동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국제선 노선 다변화와 항공사 유치에 두 지역이 함께 나서야 한다. 단거리 위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중거리 노선과 환승 수요까지 고려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환경을 바로 세우지 않은 채 터만 옮기는 선택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하늘길이 닫힌 도시에서 미래 공항의 설득력은 자라나지 않는다. 지금의 대구공항을 살리는 일은 TK신공항의 명분을 지키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터를 옮기기 전에 먼저 하늘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