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다시보는 그때 그사건
봉화 소천면사무소 엽총 난사…70대 남성 무기징역
새벽 공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경북 봉화의 한 면사무소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창구 앞에는 민원 서류를 들고 선 주민들이 있었고 책상 위에서는 도장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잠시 뒤 출입문을 통과한 남자 손에 들린 엽총 한 자루가 그 평온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총성이 울렸고 사무실은 비명과 혼란으로 뒤덮였다. 수년에 걸쳐 누적된 갈등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이 야기한 참사였다.
◇이웃간 식수 갈등, 공무원 향한 분노로 번져
모든 비극의 출발점은 식수였다. 피고인은 2014년 귀농해 봉화군의 한 산촌 마을에 홀로 정착하며 아로니아를 재배했다. 공동 물탱크에서 끌어오는 지하수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피고인의 집보다 위쪽에 위치한 주택들은 수압이 약했고, 2016년 가을 한 승려가 이사 오면서 갈등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싹텄다. 승려가 수압 문제를 이유로 모터펌프 설치를 추진하자 피고인은 기존 배관으로도 물이 부족하다며 반대했지만 "문제가 생기면 원상복구하겠다"는 말에 결국 공사를 허락했다.
2016년 12월 승려로부터 모터펌프 비용을 부담하는 말을 듣게 되자 피고인은 "니들 공사비를 왜 내가 부담해야 되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격분했고, 두 사람 사이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설상가상 2017년 1월에는 피고인 옆집의 화목보일러에서 연기가 발생하며 피해를 입게 되자 이웃에 대한 피고인의 불만은 더욱 쌓여만 갔다.
같은해 4월 피고인의 집에 물이 끊기자 직접 승려를 찾아갔다가 언쟁을 벌이면서 갈등은 손쓸 수 없이 커졌다. 판결문은 이 시기를 "양측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된 시점"으로 적었다.
피고인의 불만은 점차 행정기관으로 향했다. 승려가 자기 집 앞에 개를 풀어놓자 파출소에 승려의 개와 관련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경찰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이어 면사무소를 찾아가 배관 원상복구 비용을 요구했으나 예산 문제로 즉각적인 지원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파출소장과의 면담도 있었지만 일이 뜻대로 해결되지 않자 그는 공무원들이 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돈만 받아 나라를 좀먹는다고 여겼다. 이후 피고인의 선택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는 승려를 비롯해 면사무소 공무원들, 파출소장까지 살해 대상으로 마음속에 정했다.
분노는 충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8년 5월 피고인은 수렵면허를 취득하고 엽총을 구입했다. 실탄을 200백발을 확보했고, 집 마당에서 사격 연습을 반복했다. 법원은 이 준비 과정을 "우발을 넘어선 계획"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공사업자의 집을 수소문했고, 파출소와 면사무소를 범행 대상으로 마음속에 그려 넣었다.
◇산골마을 뒤흔든 총성…공무원 2명 순직·이웃 1명 부상
2018년 8월 21일 아침, 피고인은 파출소에서 출고한 엽총을 들고 집을 나섰다. 실탄을 장전한 엽총과 함께 가스분사기, 잭나이프, 못이 박힌 나무막대기까지 챙겼다. 먼저 승려를 찾아가 방아쇠를 당겼고, 도망가는 피해자를 향해 또 총을 쐈다. 승려는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은 건졌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곧바로 차를 몰아 파출소로 향했다. 인근 주유소에서 실탄을 추가로 장전한 뒤 파출소 안으로 진입했지만, 경찰이 이미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아무도 없자 그대로 빠져나왔다.
피고인은 그대로 차를 몰아 면사무소로 향했다.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엽총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민원행정계에서 일하던 공무원이 가슴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으며고, 곁에 있던 동료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더 큰 피해는 현장에 있던 민원인의 제압으로 막혔다.
재판부는 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총포·도검·화약류등의 안전관리에관한법률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배심원 7명 전원이 유죄에 뜻을 모았다. 양형을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사형을 선택한 배심원도 있었지만, 다수는 무기징역을 택했다.
재판부는 "다수의 인명 살상을 통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사회에 알리고 무능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직접적인 범행 동기는 실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고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며 "엽총을 준비하여 무고한 공무원을 향하여 발사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이유 없이 빼앗은 행위 및 그 결과 역시 절대로 용서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