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포토레지스트 무기로 꺼내든 日

입력 2025-12-21 15: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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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산업 틀어쥔 반도체 핵심 소재
2010년 충돌, 희토류 수출 제한한 中
자원 무기 실패 반추 日, 수입선 다변화

반도체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중국이 일본 정부가 '포토레지스트'의 중국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포토레지스트라는 반도체 소재의 힘을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인 것은 분명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중국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국 굴기의 핵심 중 하나인 반도체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갈등 해소를 향한 출구전략 없이 상대를 향한 비난의 강도만 높이는 상황에서 포토레지스트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포토레지스트'라는 필살기의 일본

현대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산업에서 포토레지스트라는 소재의 힘은 막강하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회로 형성, 즉 실리콘 웨이퍼에 정밀한 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필수 물질이다. 웨이퍼 위에 포토레지스트를 바르고 빛을 쏴 회로를 그리는 식이다.

중국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은 포토레지스트의 생산과 수출 결정이 일본 정부 조율 영역에 있다는 점이다. 주요 생산 업체 중 하나인 JSR은 이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인데 일본 정부가 국유화했다. 일본은 포토레지스트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고순도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의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한다.

SK실트론 연구원들이 웨이퍼 업계 최초로 탄소 발자국 인증을 취득한 SK실트론 웨이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SK실트론 제공
SK실트론 연구원들이 웨이퍼 업계 최초로 탄소 발자국 인증을 취득한 SK실트론 웨이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SK실트론 제공

중국이 소재 국산화에 나설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반도체 산업 태동기부터 포토레지스트 관련 기술 개발에 일본이 들인 시간은 반세기가 넘는다. 특히 7나노미터 이하 칩 등 미세공정이 필요한 제품 생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불화아르곤(ArF)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중국이 국산화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 메모리 업체인 CXMT의 사업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적이 있다. 2021년 일본 신에츠화학이 생산 문제로 포토레지스트 공급을 중단했을 때 중국 SMIC의 생산 효율은 20% 감소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만 공상시보는 "포토레지스트와 같은 소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SMIC나 화훙반도체 같은 중국 대형 반도체 첨단 공정 생산 라인은 생산량을 줄이거나 한 달 안에 완전히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장시성의 한 희토류 광산에서 작업자들이 중장비를 이용해 굴착 작업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중국 장시성의 한 희토류 광산에서 작업자들이 중장비를 이용해 굴착 작업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中,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맞대응하나?

일본도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만지작거린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의 일본 기업에 대한 희토류 수출 허가 절차가 평소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사정을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7일 보도한 바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도 "희토류를 포함한 중요 광물의 수출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고 시인했다.

중국이 갈등 관계에 놓인 상대국에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무기 삼아 압박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충돌했던 일본에도 두 달 정도 희토류 수출 중단이라는 강수를 둔 적이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풍력 터빈 ▷군사용 장비 등에 반드시 들어가는 전략 자원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은 당시 치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호주 희토류 기업 라이너스와 제휴를 맺은 건 물론 베트남, 카자흐스탄과 공동 개발 나서는 등 수입선 다변화 조치를 끝낸 상황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는 85%(2009년)에서 58%(2020년)로 낮아졌다.

20일 도쿄에서 열린
20일 도쿄에서 열린 '중앙아시아+일본 대화'(CA+JAD, 카자드)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때문에 일본의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기술력을 중국이 간과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사견을 확대 해석해 감정적 대처로 일관한다면 자칫 중국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산업 등 산업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19년 우리 대법원이 일제의 강제징용에 배상 판결을 내리고, 범정부 차원에서 '노노 재팬' 운동을 벌이는 등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하자 일본은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한 바 있다. 당시에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