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전국 최초 도입 현재 114곳 지정
IB DP 고교 1·2기 졸업생 대입 성과 긍정적
인공지능(AI) 시대에 중요한 역량은 '질문하는 힘'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똑같은 주제라도 질문하는 내용에 따라 AI가 내놓는 답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힘은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사물과 현상에 대해 탐구하고 체험하는 경험에서 나온다.
교육 현장에서는 그동안 주입식·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토론과 체험 위주 교육을 목표로 하는 시도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똑같은 정답을 고르고 상대평가로 줄을 세우는 현재의 평가 시스템 앞에서 번번이 좌절됐다. 8년 전 대구에서 시작된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도 학생들의 사고력·창의력을 키우고 질문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다. IB 교육은 현실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뿌리 깊이 박힌 교육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대구시교육청, 공교육 최초 IB 도입 8년
대구시교육청은 지난 2018년 전국 최초로 국제 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을 공교육에 도입했다.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 IBO에서 개발·운영하는 국제인증 교육 프로그램으로, 토론·발표식 수업과 논술·서술·구술 평가 중심으로 운영된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집어넣는 교육'에서 학생들의 생각을 '꺼내는 교육'을 지향하며 현재 지식 암기·객관식 평가 위주 한국 교육의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IB 학교는 기초학교, 관심학교, 후보학교, 인증학교(월드스쿨) 단계를 거치며, 인증학교는 IB 본부 전문가 현장실사를 통해 검증을 통과해야 하고 5년마다 재인증 심사를 받는다. 대구 지역에는 현재 기초학교 33곳, 관심학교 22곳, 후보학교 26곳, 인증학교 32곳으로 총 114곳이 지정돼 있다.
초등교육 과정(PYP)과 중등교육 과정(MYP)은 국가 교육과정이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IB가 추구하는 교육 방향의 뼈대만 제공한다. 학교는 교육과정과 연계한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해 학생들이 '탐구-실천-성찰'의 IB 학습 구조를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등교육 과정(DP)은 국가 교육과정과 달리 IB 교육과정을 2년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1학년은 공통 교육과정 수업을 듣고, 2·3학년은 6개의 선택교과(국어·영어·개인과 사회·과학·수학·예술)와 3개의 필수과목(지식·소논문·창의체험봉사)을 이수해야 한다.
IB 도입을 주장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IB 교육은 학생들이 독립적이면서도 협력적인 평생 학습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끈다"며 "탐구적 질문, 수행, 성찰적 생각의 역동적인 교육 경험을 통해 복잡한 글로벌 과제들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IB 학교 구성원 만족도 높고, 대입 성과도
현재 IB DP 졸업생 1·2기 128명을 배출한 고교들의 국내외 대입 성과는 긍정적이다.
IB DP는 2년 동안 학교 내부 평가와 3학년 말 치르는 IB 태평양 본부 주관 외부평가 점수를 합산해 학습 결과를 산출한다. 총 45점 만점 중 24점 이상을 받으면 IB 디플로마(수료증)를 취득하고 해당 점수를 대입에 활용할 수 있다.
IB DP 학생들은 주로 IB 점수를 인정하는 해외 대학이나 수능 최저등급이 없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논술전형 등에 지원 및 입학한다.
IB DP 고교 졸업생 다수는 캐나다·영국·호주 등 해외 대학과 수도권 주요 대학, 지방 거점 대학,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연구 중심 대학 등에 진학했다. IB DP 대학 진학률(1기 81.8%·2기 85%)도 전국 고교 평균 진학률(73.6%)에 비해 높다.
학생, 학부모 등 IB 학교 구성원의 교육 방식에 대한 만족도도 대체로 높다.
대구시교육청이 'IB 프로그램의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초등학생 94.7% ▷중학생 82.3% ▷고등학생 93.6%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96.8%), 중학생은 자료수집 및 분석능력(89.9%), 고등학생은 논리적 표현력·문제해결력·비판적 사고력(97.7%)이 가장 향상됐다고 답했다.
IB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 이은주 씨는 "어느 하나가 정답이 아니라 '이 친구는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구나'하며 서로 협의하며 중간 점을 찾아가는 태도를 기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교사들 업무 부담·전문성 신장은 과제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의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IB 교육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교원 확보는 여전히 과제다.
IB 학교 교사들은 스스로 수업을 설계하고 학생 주도적으로 탐구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지만 늘어난 업무에 대해서는 부담을 토로한다.
교과서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일반 학교와 달리 IB 학교는 IB 본부가 제시한 철학·방향에 맞춰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매년 각각 6개, 9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교사들은 국가 교육과정과 연계한 다양한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또 IB 본부, 교육청, 학교 단위로 실시하는 공개 수업과 교사 연수도 일반 학교보다 많은 편이다.
지역 IB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A씨는 "기존의 교과 준비, 행정 업무, 생활 지도 등 다른 업무도 많은 상태인데 IB 업무까지 더해지니 힘들어하는 교사들이 많다"며 "교육청에서 정책적으로 IB 학교를 확대하고 원하지 않는 교사들에게도 강요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 B씨도 "IB 교육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일반 수업 2~3배가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기초학력 과목이 등한시되기도 하고 학생들을 따로 보충해 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했다.
또 IB 교육은 교사의 전문성이 중요한데 교사의 역량 차이, 4년 주기 순환 전보 시스템에서 전문성 있는 교육이 지속될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들도 앞으로 IB 학교 정도의 강도로 학습하고 수업 공유를 하는 게 마땅하다"면서도 "교육청 차원에서 행정 업무 간소화, 인력 보조 등 IB 교사들이 지치지 않고 교육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IB 도입 8년이 지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본질적인 학습법에 대해 더 탐구하고 IB에서 얻은 교육적 경험을 일반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