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립보고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쪽방서 발생한 고립사…그 방을 치운 건 옆방 주민
"아들과 연락 안한지 수십년"…늙은 아버지는 시신 인수 거부
대구 중구 성내2동. 경상감영공원을 끼고 공구 골목 쪽으로 100여m를 더 가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풍경이 나온다. 오래된 수제화 가게, 피혁점, 카바레 사이로 일제강점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건물들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대구 최대 번화가였음을 알리는 흔적들이다.
모퉁이 하나만 돌아 개미굴처럼 퍼진 샛골목으로 들어가면 주변은 빠르게 바뀐다. 다닥다닥 붙은 낮은 여인숙과 여관들이 '요새'를 이룬 모습이었다. 대부분 지어진 지 60년 안팎의 2층짜리 목조건물로 계단이 몹시 좁고 가팔랐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49층에 이르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쪽방촌을 내려다본다. 대구의 대표적 집창촌이었던 '자갈마당'을 밀어내고 세워진 단지다. 이런 풍경은 옆동네인 대신동과 동인동의 쪽방촌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지난 9월 22일, 동인동의 A여관 101호에서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주검이 실려 나왔다. "사람이 죽은 것 같다"는 옆방 주민의 연락을 받은 쪽방상담소 직원이 101호의 문을 열었을 땐 이미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뒤였다. 사망한 양정모(56·가명)씨는 어떤 이유에선지 전기장판과 선풍기를 동시에 켜둔 채 숨을 거뒀다.
사인은 미상. 양 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노숙인 자활시설을 전전했다. 밥보다는 술을 더 자주 먹었다. 쪽방에 올 때쯤에는 각혈을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지만, 병원은 기피했다. 사망 3개월 전쯤엔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대구의료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양 씨는 의료급여 수급자가 아니었다. 그는 치료를 마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두어 달을 더 앓다가 절명했다.
공무원으로부터 아들의 부고를 들은 늙은 아버지는 "아내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데다 아들과도 연락하지 않은 지 수십 년"이라며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그렇게 양 씨는 무연고 시신으로 화장됐다.
"이거 한 번 봐요." 101호 옆방에 사는 윤광수(42·가명) 씨가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눈이 불편한 지 휴대전화를 코앞까지 갖다 댔다. 화면에는 어질러진 바닥과 핏자국, 검은 얼룩이 보였다.
"꽤 오랫동안 몰랐죠." 그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더운 날씨 탓에 건물 안에 시취가 진동했지만 이웃 중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윤 씨는 며칠간 혼자서 옆방을 치웠다. 시취(屍臭)가 밴 세간을 전부 빼내고 피를 닦고 장판을 뜯어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구더기들은 빗자루로 쓸어버렸다. 그러나 구더기는 하루만 지나도 어디에선가 또 나타났다. 그는 A여관을 거의 오지 않는 주인을 대신해 잡다한 일을 하곤 했다. "무보수 총무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생전 양 씨는 말수가 적었다. 쪽방상담소나 노숙인 자활시설에서도 그와 유의미한 대화를 나눈 사람은 없었다. 가끔은 A여관 대신 길에서 자는 날도 있었다. 구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은 날은 TV를 틀어둔 채 술을 마셨다. 가끔은 혼자 고함을 치거나 흐느꼈고, 아주 가끔은 토악질을 해댔다. 윤 씨는 이런 소리를 통해 양 씨의 존재를 확인했었다.
윤 씨가 A여관에 입주한 지는 이제 1년 반이 됐다. 그 시간 동안 얇은 벽 하나를 두고 지낸 이웃이 고립돼 숨졌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쪽방촌에서 이웃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웃의 말로가 언젠가는 나의 결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윤 씨를 계속 불편하게 했다.
가난에 의한 불편은 익숙했다. "평생을 떠돌이로 살았다"는 윤 씨의 일생은 늘 '나쁜 집'과 함께였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기찻길 옆 달셋방·무허가 판잣집, 다 쓰러져가는 노후주택에서 살았다. 지금의 쪽방에 이를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가난의 궤적을 벗어난 적이 없다.
외로움은 가난과는 달랐다. 익숙해진 듯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을 찌르듯 솟아난다. "실은 내일이 제 생일이에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윤 씨가 말했다. "당연히 평소처럼 집에 박혀 있을 거고요."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뗐다. "침울하죠. 명절이나 생일에는 더요. 이 세상에 나 하나 생각해줄 사람 하나 없는 걸 실감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