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하영석] 통상과 해운은 경제안보의 근간이다

입력 2025-12-23 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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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지난 12월 5일은 '무역의 날' 이었다. 대한민국은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처음 달성한 11월 30일을 기념일로 정했다가 2012년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한 12월 5일로 변경하였다. 이날 한국무역협회는 '2025년 수출입 평가 및 2026 전망'을 통해 올해 수출은 전년 대비 3.0% 증가한 7천40억 달러, 무역흑자 740억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성과는 국내적으로 정권교체, 국외적으로 지정학적 위기의 확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과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가중되는 시기에 달성한 것이라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2024년 한국의 명목 GDP는 1조 8천699억 달러로 세계 12위이며, 수출규모는 세계 6위이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이 36.6%로 주요 20개국(G20) 중 세 번째로 높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4%이며 이 가운데 수출 기여도가 1.93%에 달했고 무역의존도 또한 85~90%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는 수출이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통상환경이 악화될 경우 국가의 안정과 성장에 중대한 위기가 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역과 '바늘과 실'의 관계에 있는 해운은 원활한 통상활동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부정기선운송을 통해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수입하고 컨테이너운송으로 생산제품을 전세계 소비지로 수출하는 물류활동을 수행한다. 2025년 9월 기준 한국은 외항선박 1천700여척, 약 1억 중량톤(t)을 보유한 세계 5위의 해운국이다. 국내에는 약 170개의 부정기선사와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인 HMM과 아시아역내(intra-Asia) 서비스를 제공하는 13개의 중소형 선사가 있다.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고 에너지 자원의 100%, 수출입물동량의 99.7%가 해운을 이용하는 국가에서 통상과 해운의 위기는 경제안보와 직결된다. 경제안보란 전략광물자원, 첨단기술, 글로벌 공급망 등 경제 영역의 혼란과 위협이 국가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비군사적 안보위험을 의미하며, 국가의 경제적 안정성과 자율성을 국가안보의 핵심요소로 간주하는 개념이다.

불확실성이 뉴-노멀(new normal)이 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미국의 상호관세협상과 미·중 간 기술경쟁의 심화는 통상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동시에 홍해와 남중국해 등 해상요충지(maritime chokepoints)의 불안정, 러·우 전쟁, 대만해협 갈등 등 지정학적 요인과 해운경쟁의 심화로 해운위기도 커지고 있다. 통상·해운의 위기는 항만과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이의 재편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정책을 통해 세계 무역구조 재균형화, 경제안보 강화, 자국 제조업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기조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에 따라 통상과 해운 위기는 복합적·구조적인 문제로 장기화될 전망이다.

통상 위기에 대응하여 주요국들은 미국 등 핵심 소비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마켓쇼어링(market-shoring), 자국으로 옮기는 리쇼어링(re-shoring), 우방국으로 옮기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까지 공급망 대체국의 전년 대비 해외직접투자 증가율은 미국 29%, 멕시코 27.4%, 인도 14%로 나타나 이런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에서도 미국이 33.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중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다자협력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전략광물의 안정적 확보와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다자협력체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 ASEAN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해운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상요충지의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말라카해협의 대안인 순다해협과 롬복해협을 통과하는 비상항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공급망 재편으로 아시아역내 선사 간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중소선사의 규모의 경제 확보 방안 마련과 HMM의 지속 성장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선대 확충과 친환경 선박 도입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술우위 분야의 혁신, 디지털 전환과 규제 대응력 강화, 해상물류망의 최적화, 공급망 위험의 최소화 등 기본에 충실해야 통상·해운의 파고를 넘어 경제안보를 지킬 수 있다. 정쟁이 아니라 국민의 지혜를 모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