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의 '정치 과몰입'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입력 2025-12-10 11: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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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0일 배우 조진웅이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유튜브 채널
2015년 8월 10일 배우 조진웅이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유튜브 채널 '민중의 소리'

배우 조진웅을 있게 한 작품은 2012년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조연으로 5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을 모은 이 작품에서 조연 건달 역을 맡았던 조진웅은 주연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뒤 깡패와 건달, 일본군 등 이른바 악역을 주로 담당한 그의 영화 속 캐릭터성이 바뀐 건 2015년 '암살'이었다. 그는 암살에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출신 독립군 역을 맡은 뒤 이른바 정의로운 이미지가 씌워졌다.

캐릭터로만 남으면 됐지만 좌파 진영의 초대는 그에게 솔깃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8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1동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홍보대사 위촉식은 배우 조진웅의 일대기에 전환점이 됐다. 이 위촉식은 공식적인 한국 역사 관련 기념사업에 조진웅이 '얼굴'로 나선 첫 자리였다.

기념사업회는 "민족정기와 독립사상의 전통을 잇고 통일민족민주국가 건설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2012년 세워진 곳이다. 이곳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광복회, 경희총민주동문회 등에서 '친일 청산'을 위해 활동해 온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며 한국 근현대사를 해석하는 큰 축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반발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반발해 '명예졸업증' 반납 퍼포먼스를 진행 중인 정철승 민문연 고문 변호사(왼쪽), 이항증 전 광복회 경북지부장(가운데),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오른쪽)

이날 이후 조진웅은 10년간 역사기념 공식 행사와 독립운동 콘텐츠, 정치적 상징이 있는 행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역사의식 있는 개념 연예인'이 됐다. 공적인 자리에서 세월호 배지를 달고 나오는가 하면 사회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틀 뒤 열린 '2016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 위해 등장한 조진웅은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박근혜 정부가 주는 상이 달갑지 않은 듯한 수상 소감을 밝혔다. 같은 해 춘사영화상 시상식에서 그는 "기회가 있습니다. 선거합시다"라는 수상 소감을 남겨 '개념 배우'로 등극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기정사실화 된 대선 직전이었다.

그는 한 발 더 높이 올라갔다. 2017년 그는 '0509 장미프로젝트'에 참여하며 19대 대선에서는 투표 독려 캠페인에 참여했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 유튜브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 유튜브 '문재인정부 청와대'

조진웅은 좌파 진영을 넘어 좌파 정부 속으로 더 깊게 다가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3·1독립선언서 내레이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MBC 다큐멘터리 '기억록' 속 김구의 기록자,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사회, 부마항쟁일 시 낭독,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강연 등 정부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2021년에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특별사절단 '국민특사'로 참여했고 홍범도 장군 안장식 사회도 맡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8월 국민 특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를 가져오고 있는 배우 조진웅. 옆자리에 홍범도 장군 영정이 놓여있다. KBS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8월 국민 특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를 가져오고 있는 배우 조진웅. 옆자리에 홍범도 장군 영정이 놓여있다. KBS

이어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위촉도 됐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조진웅' 이미지는 거의 굳혀졌다. 육군사관학교에 독립군 5인 흉상을 세우고 독립군 전통을 육사 교육과정에서 한창 강조하던 시기였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특별사절단 배우 조진웅. 유튜브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특별사절단 배우 조진웅. 유튜브 '문재인정부 청와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2023년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이 불거지자 조진웅은 윤석열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홍범도 장군 추모식 등 독립군 기념 사업에는 계속 참여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 조진웅은 '영화인 시국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달 그는 '촛불행동'이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 응원 영상을 찍어 보냈다. 촛불행동은 현 정부 김민석 총리의 친형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반미·반일 성향의 시민단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탄핵 집회 응원 영상. 유튜브
지난해 12월 윤석열 탄핵 집회 응원 영상. 유튜브 '촛불행동tv'

올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진웅은 독립운동 관련 행사와 정치 행사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월 이 대통령 취임식 '국민임명식'에 참석했고 광복 8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했으며 이틀 뒤 그가 직접 내레이션 한 홍범도 장군 다큐 '독립군'을 이 대통령 부부와 함께 관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9월 9일 조진웅은 부마항쟁헌법전문수록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지지 발언 영상을 찍기도 했다.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배우 조진웅. 유튜브 채널 mbc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배우 조진웅. 유튜브 채널 mbc

일국의 대통령과 어깨 나란히 앉게 될 정도로 높은 곳에 다다른 그가 추락을 시작한 건 지난 5일이었다. 자신의 과거 범죄 전력이 디스패치에 보도된 뒤 조진웅은 즉각 은퇴를 결정했다. 고3 때인 1994년 강도강간 소년범 이력과 27세 때였던 2003년 동료 배우 폭행, 31세 때였던 2007년 음주운전 전과가 드러나서였다.

좌파 진영은 조진웅을 감싸기 시작했다. 정치 성향을 자주 내보이던 현직 판사와 서울대 교수, 방송국 프로듀서 출신 인사 등이 잇따라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며 조진웅을 향한 두둔성 메시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교화된 인간상의 모범'이란 이유에서였다. 실제 조진웅의 과거 범죄 전력은 그가 좌파 진영과 손을 잡은 2015년 이전에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두둔도 그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이런 두둔이 이어지는 도중 동료 감독과 배우 폭행 폭로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진웅의 동료 폭행이 2015년 이후에도 있었다는 후문이 돌자 감싸기 여론은 급격히 식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선 조진웅을 보내주지 않고 있다. 유튜버 김어준 씨는 9일 "저는 조진웅 씨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해온 여러 활동 때문에 선수들이 작업을 친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진은 더 갈 것으로 보인다. '매불쇼'에 종종 출연하는 한 변호사가 조진웅의 과거 범죄 전력을 보도한 디스패치 기자 2명을 소년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서다. 그는 "사회는 미성숙한 영혼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어렵게 결정했다. 그러나 디스패치가 30년 전 봉인된 판결문을 뜯어내 세상에 전시했다. 이는 저널리즘의 탈을 쓴 명백한 폭거"라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조진웅의 소년범 이력 외 27세 때 동료 배우 폭행과 31세 때 음주운전 전과가 확인됐고 추가 폭행 폭로도 줄을 이었지만 그들에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각종 커뮤니티에 도는 조진웅 관련 이미지
각종 커뮤니티에 도는 조진웅 관련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