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사과, 불티나는 사과로"… 재난 심리학자 김성삼 교수 회복 캠페인 '비빌언덕'

입력 2025-12-08 14: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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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통해 재난 피해 사각지대 복구부터 공동체 재건까지 도와
장기적 문화·관광 자원 결합, 지역 회복 하나의 생태계 구축 청사진
안동 사과나무 심기 캠페인 이후 다른 재난 현장도 맞춤형 프로젝트 계획

김성삼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본인 제공
김성삼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본인 제공

기후 위기와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 삶의 터전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재민들 곁에서 희망을 일구는 한 사람이 주목받고 있다. 한평생 재난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김성삼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재민 상담에 주력했던 김 교수는 이제 캠페인을 통해 재난 회복부터 지역 공동체 재건까지 돕고자 한다. 그가 주도하는 캠페인 '비빌언덕'은 버팀목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주는 활동이다.

비빌언덕의 구상은 지난 3월 영남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 이후 본격화됐다. 김 교수가 가장 먼저 찾은 안동의 피해 마을은 잿더미에 가까웠다. 집은 복구 대상에 포함됐지만, 주민들이 생계를 책임지던 사과나무들 일부만 보상받던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복구의 빈틈을 메울 주체가 결국 민간이라고 판단했다. 단순 지원을 넘어, 이재민의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울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비빌언덕의 첫 프로젝트는 내년 3월부터 진행될 안동 길안면 사과나무 심기다. 산불로 검게 그을린 사과밭을 복구하며 '불탄 사과'를 '불티나는 사과'로 바꾸자는 취지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떨어지지 않은 사과'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 교수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도 큰 태풍 피해가 있었지만, 끝까지 떨어지지 않은 사과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오치나이 링고(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캠페인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그 지역은 재난 피해 회복에 성공했다"며 "안동 길안면은 사과로 이름난 곳이다. 잿더미가 된 사과가 불티나게 팔릴 수 있다는 상징을 담아 희망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1일 안동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일원의 한 과수 농가 모습. 이번 산불에 사과 주 재배지였던 길안지역에서는 대부분 농가가 꽃눈 화상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매일신문 DB
1일 안동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일원의 한 과수 농가 모습. 이번 산불에 사과 주 재배지였던 길안지역에서는 대부분 농가가 꽃눈 화상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매일신문 DB

캠페인에 동참하면 단순 기부로 끝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적화·적과 시기, 낙엽이 지는 계절, 수확의 순간마다 안동을 찾아 나무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문화·관광 자원을 결합해 지역 회복을 하나의 생태계로 구축하는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김 교수는 "나무 한 그루가 사람들을 다시 마을로 부르는 연결 고리가 된다. 외부 참여자들이 지역을 찾으면 경제적 효과도 뒤따르고,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공동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의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는 메시지가 이재민들에게 버틸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심리적 회복은 물질적 지원보다 오래가고 공동체 안에서 더 깊게 이루어진다. 불에 탄 사과나무를 살리기 위한 나무 심는 활동은, 평생을 사과 농사에 바쳐온 농가의 잃어버린 과거를 되살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생명운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빌언덕'은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안동 사과나무 심기가 자리 잡으면, 다른 재난 지역으로 대상을 확장해 맞춤형 회복 프로젝트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 교수는 "재난은 삶을 무너뜨리지만, 그 자리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새로운 시작이 된다"며 "민간이 만드는 회복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