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경영실적 고려" 등 모호한 배당 정책 기재 금지
구체적 산출식, 재무지표 명시하도록 공시 서식 개정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추진해 온 '배당 절차 선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상장사가 모호한 문구로 배당 정책을 얼버무리는 관행이 여전하자 금융감독원이 칼을 빼 들었다.
앞으로 상장사들은 "경영 실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와 같은 두루뭉술한 표현 대신, 구체적인 배당 산출 근거와 재무지표를 사업보고서에 의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금감원은 4일 상장사의 배당 관련 사업보고서 공시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기업 공시 서식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투자자가 배당금을 먼저 확인하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배당 예측 가능성' 제고 정책이 현장에서 겉돌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부터 주주총회에서 배당액을 먼저 확정한 뒤 배당 기준일을 정하도록 독려해 왔다. 이른바 '깜깜이 배당'을 없애고 투자자가 배당 수익률을 알고 투자하게 하려는 조치다.
그러나 금감원이 2024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유가·코스닥 배당 성향 상위 100개사 등)를 점검한 결과, 상당수 기업의 공시 태도가 낙제점 수준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모호함이다. 많은 기업이 배당금 결정 요인을 묻는 항목에 "투자, 경영 실적, 재무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했다.
정관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거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에 대해서도 구체적 수치 없이 "필요시 검토"라며 빠져나가는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배당 예측 가능성 제공 여부를 묻는 항목에서도 오류가 속출했다. 배당 기준일이 배당 확정일보다 빨라 여전히 깜깜이 투자를 해야 함에도 이를 잘못 표기했다.
또 정관을 개정해 놓고도 개선 방안 이행 여부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공시 정보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분기·반기 배당에 대한 정보는 아예 누락된 경우가 태반이었다.
금감원은 이러한 형식적 공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기업공시 서식을 개정, 오는 5일부터 즉시 시행에 들어간다. 핵심은 구체성이다.
개정된 서식에 따르면, 상장사는 앞으로 배당 목표 결정에 사용하는 구체적인 재무지표와 산출 방법을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이익의 일부 배당"이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연간 잉여현금흐름(FCF)에서 자본 지출을 차감한 금액의 00%를 주주 환원에 활용한다"는 식으로 명확한 수식과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배당 관련 예측 가능성 제공' 항목도 세분화된다. 기존에는 뭉뚱그려 기재하던 것을 ▷결산 배당 ▷분기·중간 배당으로 나누어 각각 정관 개정 여부와 실제 배당 절차 개선 이행 계획을 밝혀야 한다.
이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분기 배당에서도 투자자가 배당금을 미리 알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서식 변경을 넘어, 기업들이 주주 환원 정책을 명확히 수립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수치와 산출식을 적시하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처럼 자의적으로 배당금을 줄이거나 정책을 수시로 바꾸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정관을 정비해 글로벌 기준에 맞는 배당 절차를 이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배당 관련 기재 사항을 충실히 작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