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의 해법, '협동조합청' 신설

입력 2025-12-02 10:02:33 수정 2025-12-02 10: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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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신협 이사장 전영호
팔공신협 이사장 전영호

저성장과 고물가의 파고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지만, 오히려 거대 시중 은행은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30여 년간 금융 현장의 최전선에서 실물 경제의 흥망성쇠를 목도하며, 한 가지 확고한 진리를 깨달았다.

'금융이 건강해야 국민의 삶이 바로 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민생의 위기가 도리어 금융권의 기회가 되는 '기형적 구조' 앞에서, 과연 지금의 금융 시스템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 금융 시장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거대 시중 은행은 높은 외국인 주주 비율로 인해, 막대한 이자 수익의 상당 부분이 배당을 통해 국외로 유출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수익성 제고라는 미명 하에 진행된 점포 통폐합은 지방과 고령층의 금융 접근성을 약화시키는 '금융 사막화'를 가속화했다.

이는 특정 금융기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효율성'이라는 단일 잣대로만 달려온 우리 금융 시스템의 그늘이다. 이제는 이 한계를 넘어, 국부 유출을 막고 지역 경제를 지탱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그 해법이 '협동조합 금융'의 역할 재정립에 있다고 본다.

선진 금융 강국인 미국과 유럽이 일찍이 협동조합 금융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협동조합이 가진 '자본의 지역 내 선순환 기능'과 경제 위기 시 '사회적 안전판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금융 생태계를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구조적 개선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첫째, 금융 권역별 '비교 우위'에 입각한 확실한 역할 분담이다. 모든 금융기관이 가계 대출이라는 똑같은 시장에서 과당 경쟁을 하는 것은 국가적 자원 낭비다. 거대 시중 은행은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기업 금융, 신산업 투자, 글로벌 진출 등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적 금융'을 주도해야 한다.

반면, 신협과 같은 상호금융은 지역 밀착형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가계 금융과 주택담보대출을 전담하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대한민국 금융 산업의 전체 파이를 키우는 길이다.

둘째, 가계부채의 질적 관리와 자본 흐름의 효율화를 위한 '비대칭적 규제'의 적용이다. 상호금융권이 부동산 대출 비중을 엄격히 관리받듯, 거대 시중은행의 가계 대출 쏠림 현상도 거시 건전성 차원에서 총량 규제가 필요하다.

은행 자본이 손쉬운 이자 수익보다는 국가 경제의 허리인 산업계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머니 무브(Money Move)'의 물길을 터야 한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토착 금융기관이 가계 대출을 담당할 때, 연체율 관리와 포용 금융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금융 백년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제2금융권의 관리 감독 체계를 통합하고 지원할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일이다. 필자는 지난 10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타운홀 미팅에서도 이 점을 강력히 피력한 바 있다.

현재 우리의 상호금융권은 신협(금융위원회), 새마을금고(행정안전부), 농·축협(농림축산식품부), 수협(해양수산부), 산림조합(산림청) 등으로 주무관청이 제각각 흩어져 있다. 이처럼 동일한 서민금융 기능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감독 체계가 분산된 현실은 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금융 소비자인 서민들에게 불필요한 혼란과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금융은 우리 몸의 혈액과 같다. 심장에서 뿜어내는 큰 동맥(거대 시중 은행)도 중요하지만, 신체 구석구석 산소를 공급하는 모세혈관(협동조합 금융)이 막히면 결국 몸 전체가 괴사한다. 흩어진 모세혈관을 하나로 잇고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협동조합청(가칭)' 설립이 필수적이다.

선진국의 성공 사례가 증명하듯, 결국 '협동조합청' 설립은 단순한 행정 통합을 넘어 대한민국 금융 백년대계를 바로 세우는 담대한 결단이다. 이것이야말로 무너진 서민 금융 생태계를 복원하고, 우리의 금융 주권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전영호 팔공신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