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에 '눌어붙은 죽음'⋯고독사 알린건 냄새 뿐이었다

입력 2025-12-01 16:46:42 수정 2025-12-01 17: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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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립보고서] '햇살빌' 201호 고독사 현장
생전 복지센터 후원도 거부한 최 씨
1년간 고립 밀집 행정동 찾아 밀착취재…고립의 매커니즘 밝힌다

[편집자주]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관계가 끊기고, 병들고, 가난이 이어지는 시간이 길게는 수십 년간 쌓이며 서서히 자라난다. 그 끝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죽음'으로 매듭지어진다.

본지는 지난 1년 동안 고립 가구가 몰린 대구의 영구임대아파트, 원룸촌, 노후주택가, 쪽방촌을 직접 찾아가 주민들의 삶을 기록했다. 고립 위기 1인 가구 57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취재 기록을 토대로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함께 주거유형별 고립이 어떻게 형성되고 이뤄지는지 정리했다. 기획 과정에서는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의 자문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구의 고립을 다층적으로 다루는 시리즈를 7회에 걸쳐 보도한다.

지난 8월 찾은 대구 남구 대명1동 오래된 다세대주택
지난 8월 찾은 대구 남구 대명1동 오래된 다세대주택 '햇살빌' 201호 벽에는 하와이안 셔츠와 밀짚모자가 걸려 있었다. 바닥에는 낡은 여행용 캐리어가 서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이던 최기훈(60‧가명) 씨의 시신은 사망 후 약 일주일 만에 발견됐다. 신중언 기자

대구 남구 대명1동 오래된 다세대주택 '햇살빌' 201호 벽에는 여름이 걸려 있었다. 창문 옆에 걸린 하와이안 셔츠와 밀짚모자는 바닷가 휴양지를 떠올리게 했다. 창밖으로 늦여름 매미들의 합창이 쏟아졌다. 그러나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낡은 여행용 캐리어가 여행지로 들려가는 일은 없었다.

이 201호에 살던 최기훈(60·가명) 씨는 지난 8월 17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시신은 일주일 뒤인 24일에나 발견됐다. 한 여름에 시신은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부패한다. 그래서 정확한 사망 시간은 알지 못한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그 흔적이 깊이 스며든다. 201호도 그랬다. 시신에서 나온 체액과 기름이 사람의 형태로 눌어붙어 있었다. 주변으로 구더기 떼가 들끓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취를 옮겨나를 뿐, 없애진 못했다.

201호의 현관문이 열리는 날은 드물었다. 누군가 노크할 일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최 씨의 죽음은 일주일 간 5평 남짓한 방 안에 머물다 문 틈으로 새어나왔다.

"결국 냄새로 죽음을 알리는 거예요. 무관심병이죠 뭐. 가족도 이웃도 찾질 않으니까." 특수청소업체 마루의 김도준 대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방 안의 쓰레기를 수거해나갔다.

특수청소업체 관계자들이 최 씨의 방을 청소하는 모습. 신중언 기자
특수청소업체 관계자들이 최 씨의 방을 청소하는 모습. 신중언 기자

'혼자 죽음'이란 사건의 이면에는 철저하게 고립된 삶이 있었다. 최 씨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 씨 역시 누구도 찾지 않았다. 그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행정복지센터 직원의 안부 전화도, 후원 물품 권유도 번번이 거절했다.

201호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오늘도 당신의 동네에서는 이름 모를 이웃이 홀로 사망했을 지도 모른다. 지난해에만 575명이 대구에서 고독사 및 무연고사로 사망했다. 이런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은 더 많다.

고립된 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대구지역 고독사 위험군 1만682명의 주소를 확보해 지도 위에 옮겨보자 '사회적 고립의 좌표'가 드러났다.

본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1년간 위험군이 쏠린 행정동을 직접 찾아가 고립 위기 1인 가구의 일상을 관찰했다. 그 가운데 57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진행해 ▷사회관계망 ▷고립의 경로 ▷질병 이력 ▷홀로 산 기간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이들의 고립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이 확인됐다. 고립 가구는 특정 행정동 안에서도 특정 주거유형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고, 고립의 양상 또한 서로 비슷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영구임대아파트였다. 장기 수급자와 장애인, 만성질환자가 밀집한 공간이며 생활권이 폐쇄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복지사의 방문 외에는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는 거주민들이 많다. 오래된 독거와 빈곤이 겹치며 고립은 '만성'의 형태로 굳어져 있었다.

원룸과 고시원이 밀집한 대학가 주변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년과 중장년 단기 체류자가 많은 대학가로, 낮은 정주성과 익명성이 특징이다. 이들의 생활권은 영구임대아파트보다 더 좁은 '방 안'이다. 거주민들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민감도가 높았다. 복지 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짙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고립은 '은둔'의 형태로 나타났다.

노후주택가도 고립에 취약했다. 오래된 다세대·연립주택이 밀집한 동네에는 장기간 고립된 노년층과 단기 유입 세입자가 뒤섞여 있다. 한동네에서 수십 년을 버티며 관계망이 희박해진 고립과, 저렴한 월세를 찾아 들어왔지만 지역사회와 연결되지 못한 고립이 동시에 존재했다. 서로 다른 두 고립이 한 공간에서 겹치는 '혼합 고립'이 여기서 드러났다.

쪽방촌은 위험군 실태조사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가장 극단적인 고립이 일어나는 곳이다. 쪽방주민들은 최저주거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사회 관계망 회복의 동력까지 소진된 상태였다. 이들의 고립은 말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의 형태였다.

강상훈 대구보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는 단순한 거주의 공간을 넘어 개인의 관계망과 삶의 영역이 실현되는 중요한 생활 기반"이라며 "주거환경의 열악성이 고립을 강화한다는 건 사실이나, 단순히 물리적 조건뿐 아니라 주거유형에 따른 관계망 구조, 제도 접근성, 공간적 낙인 등 사회적 요인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요소를 종합해 주거유형별 고립의 유형을 구분하고, 그에 맞는 복지 자원을 개입시킨다면 고립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대구보건대의 연구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