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가 된 사과]사과 풍년에 웃지 못하는 경북 농가

입력 2025-11-25 16: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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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해·우박으로 이미 봄부터 과실 피해 많아
달려 있던 과일은 날씨 탓에 색도 안 나
비싼 몸값 탓에 남 줄 험과도 없어 '민망'

지난 10월 중순 수확을 앞둔 사과 부사 품목. 예년 같으면 크기는 완숙이 됐고 막바지 색깔만 더욱 선명하게 잡을 시기지만 연일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계속돼 색깔이 전혀 잡히질 않았다. 전종훈 기자
지난 10월 중순 수확을 앞둔 사과 부사 품목. 예년 같으면 크기는 완숙이 됐고 막바지 색깔만 더욱 선명하게 잡을 시기지만 연일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계속돼 색깔이 전혀 잡히질 않았다. 전종훈 기자

올해 봄철 냉해와 우박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경북 청송과 의성, 영양, 안동 등 사과 주산지 농민들은 달려 있는 대부분의 과실을 수확하며 묵묵히 농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가격이 오르더라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김영수(63) 씨는 "사과가 적게 달렸다고 해서 농자재나 농약값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적기에 맞는 농약을 쳐야 나무와 잎, 과실에 병이 오지 않고, 비료를 줘야 나무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 씨는 "가을까지 정성껏 키운 사과를 출하 전 색을 내려고 했지만 거의 한 달 동안 흐리고 비가 와 색이 나질 않았다. 특히 시나노골드는 비를 먹어 터진 과실이 많아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달려 있는 채 썩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껍질이 얇고 잘 물러 터진 시나노골드는 수확 시점이 늦어질수록 피해가 커, 어쩔 수 없이 조기 수확할 수밖에 없었다. 부사도 가격이 좋았지만 떨어지면서 흠과가 될까봐 12월 이전에 수확을 마쳤다.

안동에서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박경수(57) 씨는 "사과 가격이 좋아도 수익이 별로 남지 않는다. 자재값과 밀린 인건비를 계산하면 거의 맞아떨어지거나 밑지는 상황"이라며 "올해처럼 냉해와 우박이 겹치면 사과를 잘 길러도 돈이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도 많아, 안동과 의성, 청송, 영양, 영덕 등에서는 사과 생산량이 현저히 줄었다. 이로 인해 사과값이 올라도 실제 팔 수 있는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반대로 냉해나 우박 피해가 없었던 일부 지역 농가만 풍년의 혜택을 누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계약 재배 농가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청송에서 5년째 대형 유통업체와 계약 재배를 하는 심모(61) 씨는 "올해 사과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우리 농가는 5년 전 평균가격으로 납품해야 했다. 계약물량을 채워야 하므로 가격 상승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이 높아도 언제 떨어질지 몰라 안정적인 납품을 택한다. 흠과도 비슷한 가격으로 모조리 사가면서 상대적으로 유통업체가 이득을 본다"고 덧붙였다.

청송 지역에서는 사과값이 오르자 밭을 지키는 농민도 늘었다. 청송에서 30년째 사과 농사를 짓는 최모(68)씨는 "사과 한 개당 3천~8천원까지 오르자, 외지인에게 피해를 입을까 봐 개별 농가나 마을 단위로 방법을 세웠다"며 "한 바구니에 2~3만 원일 때는 외지인에게 맛보라고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20~30만원어치라 사과 하나도 쉽게 남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