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로 살 결심
문유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
누군가는 그를 보며 타고난 재능이 많다고 그저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재능을 영리하게 사용하며 재능에 온전히 자신을 맡겨보는 것은, 타고난 것과 별개로 엄청난 용기를 요한다.
2020년, 23년 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 하고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을 택한 문유석 작가에게도 전업이라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사회적 존경을 받는 판사라는 직업, 특히나 안정된 직장을 떠나 프리랜서로 전업하기까지 고민의 두께가 만만찮았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펴낸 지 꼭 10년. 문 작가의 새로운 책 '나로 살 결심'에는, 그가 두 번째 삶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하루아침에 바뀐 삶에서의 시행착오, 성찰이 담겨있다.
그는 여러 글을 통해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로서의 삶을 강조해왔다. 법관의 독립성이야말로 재판의 공정성을 이루는 바탕이자 법치국가가 제대로 기능할 토대로 여겼기 때문. 하지만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법원장 재판 개입, 양승태 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 사법농단을 목격하며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무엇보다 몸담았던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세를 축소하고자 그를 '어용연구회장'으로 이용하려했다는 문건이 발견되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이 막다른 곳에서, 그는 결심하기에 이른다. "주제에 맞지 않는 무거운 옷을 벗고", "온전한 한 개인으로 돌아가 나 자신을 책임지는 삶을 살기"로.
1부 '첫 번째 삶과의 작별'은 한 조직에 오랫동안 헌신했던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얘기들로 채워졌다. 절대적 신뢰와 원대한 이상을 품고 조직에 입성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의 분노, 부속품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무력감, 이후에도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우려 등이 동시에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그토록 사랑했고 바꿔놓고 싶던 법원을 첫사랑 잃듯 떠나보냈다.
2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에서는 23년 간 출퇴근 생활자, 월급 생활자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작가로 사는 삶에서의 시행착오가 펼쳐진다. 재무관리부터 시간관리, 노화, 창작 스트레스, 슬럼프까지 모든 것이 예측불허 그 자체였다. 긴 시간을 OTT 중독으로 허비하고, 주식투자로 일희일비를 반복하며, 잠 못 이루는 갱년기를 통과하며 그는 점차 자신만의 생존법을 정립해나갔다. 고군분투 끝에 그는 '실패와 좌절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임'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의 필력은 '개인주의자 선언', '최소한의 선의', '판사유감', '쾌락독서' 등을 통해 증명된 바다. 판사들의 일상적 고민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쓴 '미스 함무라비'는 드라마로 제작되며 각본 작업까지 맡았고, '악마판사'의 대본도 집필했다. 3부 '매력적인 오답을 쓰는 삶'은, 이처럼 '프로 이야기꾼'으로서 좋은 이야기란 어떤 것인지, 대중의 즉각적 반응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 등의 고민을 술술 풀어간다.
이 책은 대단한 두 번째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도,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을 담은 것도 아니다. 그저 삶의 후반부를 완전히 다른 서식지로 옮긴 한 사람의 자기인식과 고투, 성찰로 가득하다. 바뀐 삶의 자리에서 작가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전의 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라고.
'문유석식 전업일지'라 할 만한 이 책은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이 충실할 때 도래한다는 것을, 또한 두 번째 삶의 실수와 좌절, 불안을 정직하게 대면할 때만이 새 삶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44쪽, 1만7천5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