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가 제86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대구 출신 예술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상춘 선생에게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번 서훈은 현대미술 전시장인 '공간리상춘'의 공동대표이자 '리카(이상춘현대미술학교)' 대표인 김기수 씨가 지난해 10월 보훈부에 제출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토대로, 보훈부의 자체 조사와 공적심사를 거쳐 확정됐다.
1910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춘 선생은 일제강점기 화가, 삽화가, 무대장치가, 연극 잡지 발행인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예술을 통한 조국의 독립과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꿈꿨다.
그는 1932년 서울에서 신사회 건설을 위한 잡지 '연극운동'을 발간하고 극단 '메가폰' 및 '신건설'을 조직해 활동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또한 1935년 극단 '신건설'에서 일본 침략전쟁에 대한 반전(反戰) 활동을 하다 체포돼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당시 그는 신진 무대장치가로서 장래가 촉망됐으나, 안타깝게도 1937년 만 27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보훈부는 이상춘 선생의 공훈록에서 "연극 활동을 통해 민중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알리고 조국 독립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며 "그의 활동을 통해 1930년대 문화예술 부문에도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일본 내 문화예술 단체와 연계해 국내외 사정을 공유하며 연대활동으로 독립운동의 공동전선 확대에 노력했다"며 활동 의의를 설명했다.
공간리상춘 측은 "대구 문화예술계는 1990년 민족시인 이육사와 이상화가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 이족장을 받은 이후 또 하나의 큰 성취를 얻었다"며 "대구가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그 명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이상춘 선생의 유족은 확인되지 않고 있어, 앞으로 이에 대한 지자체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공간리상춘 측은 "그의 부모가 김해로 이사를 간 기록까지는 있으나, 그 이상으로 우리가 접근하기에는 개인정보법 상 한계가 있다"며 "대구시와 중구청 등이 나서서 유족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훈장과 보상금이 유족에게 수여되고, 나아가 그의 묘지를 찾아 국립현충원으로의 이장이 이뤄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