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이용호] 2,059

입력 2025-11-0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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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의 호르나다 델 무에르토(Jornada del Muerto)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자행되었다. 그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그 실험의 연쇄반응으로 인해 지구가 통째로 불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대지(大地)는 불타지 않았지만, 원자탄이라는 가공할 악령(惡靈)을 탄생시켰다.

원자탄의 군사적·전략적 가치는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로 하여금 너도나도 핵실험에 뛰어들도록 매료시켰다. 1945년의 미국을 필두로, 소련(1949년), 영국(1952년), 프랑스(1960년), 중국(1964년), 인도(1974년), 이스라엘(1979년 추정), 파키스탄(1998년), 북한(2006년) 등이 줄줄이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2017년 9월의 북한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총 2천58회(탄두 수 기준 2천87개, 추가로 평화 목적 핵폭발 143회)의 핵실험이 지축(地軸)을 뒤흔들었다. 이로부터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로 분출되었고, 한때 6만9천368개의 핵탄두(1986년)가 지구상에 으르렁댔다.

핵실험은 신형 핵무기의 개발과 기존 핵무기의 신뢰성 입증에 필수적 과정이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이 핵실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985년까지 9일에 한 번꼴로 핵실험이 있었다. 그야말로 지구는 죽어 가고 있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인한 긴장 완화는 핵실험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국면을 가져왔다. 러시아(1991년), 미국(1992년), 영국(1994년), 프랑스(1993년, 1996년), 중국(1993년, 1996년) 등이 '핵실험 중단' 조치를 자발적으로 취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1996년 9월 10일 핵실험을 포괄적으로 금지(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 등 제외)하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미발효)'이 체결되기도 했다. 2000년 인도와 파키스탄도 추가적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핵실험의 자제 노력(북한 제외)과 핵탄두 수의 감축(1만2천340개, 2025년 1월 기준)에 힘입어, 21세기의 지구촌은 '핵실험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지난 10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한 '핵실험(비임계 실험 포함) 재개 선언'이 국제사회를 새로운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러시아도 당장 조건부 핵실험 재개를 표명하면서 맞받아치고 있다. 비교적 핵실험 데이터가 빈약한 중국은 아마 속으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핵무기 고도화가 절실한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핵실험 금지 공약을 깨뜨려 주기만을 기다리는 모양새이다.

그동안 지켜져 왔던 '핵실험 유예 조치'가 깨어지면, 1950, 60년대와 같은 핵군비 경쟁시대로 되돌아가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무분별한 핵실험이 가져온 해악으로 인해 인류는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그로부터 지구의 자연환경은 훼손되었고, 인류는 핵무기 사용 위협에 직면했다. 만약 핵실험이 경쟁적으로 재개된다면, 또다시 인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악습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누가 '핵실험 금지'라는 벽을 허무는, 아니 2천59번째 핵실험을 자행하는 악령을 뒤집어쓰려고 하는가? 핵실험의 재개 여부는 인류의 총의(總意) 없이 일국의 정치 지도자가 독단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세계가 술렁이고, 우려하는 이유이다. '호르나다 델 무에르토', 즉 '사자(死者)의 여정'이라고 이름 붙여진 사막, 지구가 '호르나다 델 무에르토' 사막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선택하고 결정할 문제다.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