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화 막으려면 골든타임 지켜야… 발달장애 조기 진단·평생돌봄의 과제"

입력 2025-11-16 15: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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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개입 위해선 진단할 수 있는 의사 많아져야…영유아 건강검진도 의무화되어야
소득 기준으로 제한한 복지서비스 행정편의주의적, '발달장애 가정이 처한 사회적 환경' 등 정교한 기준 적용 필요
이재명 대통령, 후보 시절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공언…전문가들 "사례관리에 중점을 둬야"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

발달장애 가정에서 반복되는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사건은 부모의 돌봄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복지서비스 강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정부는 '발달장애인 평생돌봄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예산을 확대했고 최중증을 대상으로 1대1 지원 사업도 마련했다. 최근에는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추진을 위해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도 처음 가동됐다.

그럼에도 발달장애인 가정들이 지원제도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조기 개입으로 발달장애 출현율을 낮추는 방안부터, 복지서비스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 치료 골든타임 위한 조기 진단 체계 구축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에 따르면 발달장애는 조기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언어와 사회성 발달이 현저히 뒤처진다. 치료의 '골든타임'이 존재하나, 현실은 발달지연을 인지한 부모가 의사를 만나 진단받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거점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의 평균 대기기간은 최장 532일에 달한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의료계에서는 발달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 의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 진단까지 소요 시간이 짧아지면 조기 치료가 가능해지고, 그만큼 장애의 중증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은 "자폐성 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 소아정신과 의사는 전국에 400명 남짓이다. 이 가운데 8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며 "반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경우 2천600여명에 달하지만 진단이 불가능해 치료만 맡고 있다. 진단 가능한 의사가 많아지면 오래 기다리는 발달장애 가정을 줄이고, 치료의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다. 또 중증으로 악화하는 사례도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유아 건강검진 법제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입소 시에만 서류 제출이 의무화되어 있다.

의료계에선 언어 발달 초기이면서 사회적 상호작용 발달을 확인할 수 있는 생후 '18개월'과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36개월' 등 2번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경우 모자보건법에 따라 생후 6개월과 3세 시점에 건강검진을 의무화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영유아 건강검진은 발달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소아 20만명 중 6~8% 정도는 건강검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제화를 통해 위험 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예약부터 진료 등 각종 도움을 연계할 지역의 거점병원이 조속히 지정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3년 관련법 개정으로 각 시도에 1개 이상의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을 발달장애인 거점병원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간 여러 차례 거점병원 신청 공모가 있었으나, 대구는 지난 9월 마감된 공모까지 단 한 곳의 의료기관도 신청하지 않았다.

손순희 대구시장애인부모회장은 "대구는 발달장애인 수가 많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대학병원들과 거점병원 관련해서 논의해봤지만 소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자체와 대구 시민이 함께 관심을 갖고 병원들과 협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 상생을 위해선 지원책 손봐야

발달장애인 가정을 위한 각종 복지 제도들이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소득으로 지원을 제한하는 현행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활동지원사가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장애활동지원서비스'의 경우 차상위 계층 초과 시 매달 최대 약 10만원의 자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성인을 위한 주간이용시설 역시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하면 월 20만원을 내야 한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서비스 소득 기준 등으로 제한하는 건 행정편의주의적이다. 활동지원서비스를 보면 많은 시간을 쓸수록 자부담이 늘어나는데, 이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서비스 이용을 못하는 가정도 있다"며 "서비스 지원 자격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발달장애 가정이 처한 사회적 환경' 등 정교한 기준을 적용해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학령기를 벗어난 성인에게 지원책이 확대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언어·청능치료 등을 지원하는 발달재활서비스는 만 18세 아동까지만 지원하고 있다. 성인 발달장애인을 보낼 수 있는 주간활동센터와 주간이용시설의 경우 대기 인원이 많고, 일부 시설은 면접 이후 입소를 거부하고 있다.

황수경 아스트로젠 대표이사(소아신경과 전문의)
황수경 아스트로젠 대표이사(소아신경과 전문의)

황수경 소아신경과 전문의는 "아동기에는 치료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으나, 성인이 되면 많은 지원제도가 끊기고 있다. 성인의 경우에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특수치료의 경우 비용이 비싸고 그 책임을 가족이 부담하고 있다"며 "성인기에 맞는 돌봄과 지원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결국 가족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돌봄자 부재 시 이용할 수 있는 긴급돌봄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만 한다. 예컨대 보호자가 치료·입원을 하게 되면 진료확인서 등이 필요한데 이는 긴급성을 본질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발달장애 가정은 긴급·응급 상황에 서류를 뗄 시간도 없다. 그런 여유가 있다면 긴급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라며 "현행 긴급돌봄서비스는 제도의 취지랑 맞지 않다. 긴급복지지원법처럼 우선 지원해 주고, 대상이 안 됐다면 이후에 취소되는 것처럼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촘촘한 국가책임제로 거듭나야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지난 4월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를 공언했다. 그 일환으로 최근 보건복지부는 서비스 간 연계를 강화해 촘촘한 돌봄 체계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진정한 국가책임제로 거듭나기 위해선 사례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발달장애인마다 생애주기별 욕구에 맞춘 지원계획 수립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지역발달장애인센터에서 개인별 지원계획이 수립 중이지만 지원 물량은 현저히 적은 상황이다.

나운환 대구대 재활상담학과 교수
나운환 대구대 재활상담학과 교수

나운환 대구대 재활상담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치료부터 고용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나라 개인별 지원계획은 사회복지사 손에서 이뤄지고 있다. 부모들이 지원책을 체감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미국처럼 학교에서 장애아교육법에 의한 개별화 교육계획부터 졸업 이후 재활법에 의한 개별화 고용계획까지 세우는 탄탄한 사례관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에 명시된 복지서비스의 신청주의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부모 393명 가운데 50%(1·2 순위 합산)가 복지서비스 이용 시 '어떠한 서비스가 있는지 몰라서 어려웠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가 공공요금 감면이나 세제 혜택 등 간접지원을 받는 데 그치는 실정이다.

특히 자녀의 발달장애 발견 이후 복합적인 문제를 경험하는 부모들에게 일원화된 '원스톱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지아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부연구위원은 "발달장애인 부모 상당수가 정보망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고령의 부모는 여러 기관을 거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지원을 포기한다"며 "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선 첫 장애 진단 시점부터,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령 장애등록 시 주민센터에서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찾아가는 상담서비스'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도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교육부터 고용, 복지 등 서비스가 제각각이라 한 번에 지원받기 어렵지만 현실은 부모가 모든 걸 감당하고 있다"며 "부모가 찾아오면 필요한 서비스를 한눈에 안내해 줄 수 있는 원스톱 지원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발달장애인 돌봄의 국가책임제를 국정과제에 포함한 것은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추진하겠다는 약속이다"며 "활동지원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의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작업도 계속해 나갈 것이고, 개인별 지원계획과 관련해선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사례를 관리하면서 지원하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최중증을 담당하는 활동지원사에게는 가산급여를 제공하고 있고, 더 잘 연계할 수 있도록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7일 대구 남구의 한 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상훈(46·가명) 씨가 라디오들 사이에 앉아 있다. 상훈 씨는 라디오에 집착해 집 안 곳곳에 크기와 모양이 다른 라디오 수십 대를 쌓아두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7일 대구 남구의 한 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상훈(46·가명) 씨가 라디오들 사이에 앉아 있다. 상훈 씨는 라디오에 집착해 집 안 곳곳에 크기와 모양이 다른 라디오 수십 대를 쌓아두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