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박성현] 지연되는 기차와 정치

입력 2025-10-29 17:30:00 수정 2025-10-29 18:54:27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박성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박성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박성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경산에서 서울 가려면 원래 나오던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나와야 해서 진짜 돌아뿌겠다."

경부선·대경선 지연 기사가 나간 뒤 평소 알고 지내던 취재원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 8월 19일 경부선 무궁화호 사고 이후 철도교통을 이용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기사를 보고 속이 시원해졌다는 얘기였다. 그는 "경산역에 오전 11시 30분쯤 오는 대경선을 타기 위해 10분쯤 도착하면 그제야 11시에 오기로 했던 대경선이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대경선이 늦고, KTX도 지연되니 서울 약속에 자꾸 늦어 이제는 아예 일찍 출발한다"고 했다.

처음 이 기사도 비슷한 취지의 제보로 시작됐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대경선이 너무 늦고, 덩달아 경부선 KTX까지 지연 사례가 빈번하다는 취지였다. 마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권영진 의원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본격적인 공조가 시작됐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가 나갔고, 권 의원은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장에서 장관을 향해 관련 질의를 이어갔다.

국회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면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15일 일부 작업 중지 조치를 해제했다. 이에 다음 날부터 코레일은 시속 60㎞대로 저속 운행을 하던 경부선 구간의 열차 속도를 다시 높여 나갔고, 열차가 예정된 시각에 역에 도착하는 정시율도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 8월 사고 이후 한 달간 고속열차 정시율은 62.56%로 사고 전 한 달간 고속열차 정시율(78.04%)보다 15.48%포인트(p) 떨어졌으나 일부 작업 중지 해제 후 정시율은 70.14%까지 회복한 것이다.

조만간 경부선은 완전 작업 중지를 해제해 정상 운영 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해 "오는 31일 경부선 사고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의 작업 중지 명령이 대부분 해제될 전망"이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최초 작업 중지 당시에는 고용노동부의 행정명령이 올해를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진 셈이다.

문제는 고용노동부의 광범위한 작업 중지 범위가 적절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 중지 범위가 해당 장소 및 작업에 한정돼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코레일 대구본부 전체 구간, 모든 선로 작업을 대상으로 작업 중지를 하는 바람에 열차 지연 문제가 더욱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에는 공감이 가나 이 같은 조치는 이례적이라는 게 철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항간에는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관련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온다. 작업 중지 명령 해제 신청을 위해선 현장 근로자의 의견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빌미로 노조가 코레일에 인력과 예산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이 작업 중지 명령을 과도하게 내린 덕에 코레일 노조는 사측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국민들의 묶인 발이 노조의 협상 카드가 된 것.

이재명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이번 주를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된다. 경부선·대경선 지연에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처럼 국정 운영 곳곳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기다리는 국민이 많다. 하지만 국회 안에서는 "국감이 정책 대결 대신 쇼츠 대결로 바뀌면서 이제는 밤새우는 보좌진도 안 보인다"는 자조가 나온다. 철도만큼이나, 정치와 정책도 국민을 기다리게 하는 건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