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닮아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가스인라이팅]

입력 2025-10-27 07:30: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현지 시각 지난달 10일 프랑스 파리 플라스 데 페트(Place des Fêtes) 인근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관. AFP·연합뉴스
현지 시각 지난달 10일 프랑스 파리 플라스 데 페트(Place des Fêtes) 인근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관. AFP·연합뉴스

프랑스는 오랫동안 좌파 진영의 이상향이었다. 천연 에너지·광물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도 GDP 대비 복지 지출이 세계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연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복지 지출 확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프랑스 사례가 반박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프랑스는 현재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정부에서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의회의 불신임을 받았다. 지난 8일에는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도 불신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무려 9개월 만에 정부 내각이 두 번이나 교체된 것이다. 둘 다 긴축 예산안을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현재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국제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을 2년 동안 두 단계나 하향 조정했을 정도로 심각하다. GDP 대비 정부 지출은 54.5%로 G20 국가 중 1위이며 재정적자는 GDP의 5.7%에 달해 EU 재정 준칙인 3%를 크게 초과한다. 국가 부채는 GDP의 113%를 넘었다. EU에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사회복지 지출은 GDP의 32%로 OECD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가운데 공공연금 재정은 고갈 직전이다.

프랑스 좌파 언론과 시위대는 마크롱의 '부자 감세'가 재정을 악화 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여전히 45%에 달하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마크롱이 자산 전체에 대한 부유세를 부동산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개혁했지만 근본 문제는 과도한 정부 지출 구조에 있다. GDP 대비 54.5%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부 지출을 유지하면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자 증세로 당장 세수를 확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은 국가끼리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이다. 증세가 부담스러운 부자가 이탈한다면 세원이 줄어들어 재정 악화는 더 심화된다. 늘어나는 복지 요구와 고갈되는 연금, 각종 보호정책과 규제, 부자에 대한 악마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목격되는 익숙한 패턴이다.

한국의 내년 국가 채무는 약 1천400조원으로 GDP 대비 51.6%에 육박한다. 문재인 정부 5년 간 국가 채무가 약 400조 원 증가했으며 이는 이전 정부들보다 2배 이상 빠른 증가 속도였다. 이재명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는 내년 지출 규모를 8%나 늘렸다. 이대로 가면 2029년 국가채무는 1천800조원으로 GDP 대비 58%에 달할 것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주요 공적연금·보험도 재정 고갈 위기에 직면해 있으나 개혁 논의는 표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개혁의 씨앗을 심은 적 있다. 윤석열 정부는 1% 법인세 인하를 했지만 '부자 감세'로 낙인 찍혔다.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 축소나 연금 개혁 논의는 정치적 자살행위로 여겨진다. 유권자들은 당장의 복지 혜택 감소를 거부하며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

프랑스의 재정 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속 불가능한 복지 확대와 포퓰리즘 정책의 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한국도 프랑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재정건전성 확보와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의 오늘이 우리의 내일이 될 것이다.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