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수련병원 상황 심각…전공의 없이도 2년 버텼는데 배수친 쳐
유사 계약 전공의들 줄소송 이어질 듯
대법원이 전공의 초과근무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직후 수련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른 인건비 계산을 다시 하게 되면 전공의에게 드는 인건비 뿐만 아니라 현재 근무하는 교수들의 부담 또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립 수련병원들은 지난 2년간 의정갈등으로 인해 전공의 없는 상황에 익숙해진 터라 인건비 추가부담 보다는 전공의 근무를 줄이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다. 이와별도로 유사한 계약을 맺은 전공의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 전공의 근로자로 인정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A씨 등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출신 3명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억6천900만~1억7천8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2014~2017년 이 병원에서 일한 A씨 등은 "수련 기간 근로기준법상 추가 근로 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전공의가 교육생인 동시에 진료 계획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근로자이므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수련 계약에 포괄임금제에 관한 구체적 규정이 없어 포괄 임금 약정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초과근로 기준을 '주 80시간'이 아닌 '주 40시간'으로 보고 병원이 이들에게 1억6천900만~1억7천8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주 80시간'을 규정한 전공의특별법의 취지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제한 없이 수련하는 것을 허용하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전공의들은 "전공의들의 초과 근무가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왔던 것을 바로 잡은 것"이라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수련병원 재원마련 빨간불
수련병원 중 국립대병원처럼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설립한 병원이 아닌 사립대나 종합병원의 경우 재원 마련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대구 시내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주 80시간 계약을 맺어도 주 40시간 이상 초과근무 시간에 대해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면 당직 등 초과근무가 인정되는 자리에 교수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된다면 교수들의 업무 부담도 커지고 교수들에게 줘야 하는 수당이 전공의들에게 줘야 할 수당보다 더 크기 때문에 병원 경영 입장에서도 엄청난 부담이 가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련병원들이 더 크게 걱정하는 부분은 수련의 부실화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초과근무 수당을 줄 수 없는 병원은 당연히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게 될 테고, 그렇다면 수련에 임하는 물리적 시간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전공의들은 의정갈등으로 인해 수련 시간의 공백이 큰 상황에서 받아야 할 수련시간 조차 줄어들 가능성이 커져 제대로 된 수련을 받지 못하고 전문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대구 시내 수련병원 관계자는 "일부 진료과는 수련 기간을 지금보다 1년 더 늘리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지 모른다"며 "대법원 판결 이후 수련병원들 간 논의가 이뤄지겠지만 수련의 부실화를 어떻게 피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