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민주당 소속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 탈출을 시도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방대법원이 뉴딜 핵심 입법을 연이어 위헌이라고 판단해 무효화해서였다. 보수파 대법관 4명은 중도파와 연대해 연방대법원 9석 가운데 과반을 차지하고 뉴딜 핵심 입법을 모조리 원점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루스벨트 대통령 행정부는 70세 이상 대법관당 대법관 1명을 추가 임명하겠다는 이른바 '코트 패킹(Court-packing)'이라는 사법개혁안을 냈다. 당시 70세 이상 대법관은 6명이어서 이 안이 통과되면 루스벨트 대통령 입장에선 즉시 자기 편인 대법관 6명을 추가로 앉힐 수 있었다.
그런데 엉뚱한 데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같이 민주당 소속이었던 새뮤얼 페틴길 하원의원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법개혁안을 비판하며 "이것은 선한 사람이 원해서는 안 되며 악한 사람이라면 가져서는 안 될 권력"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주도한 상원 법제사법위원회는 대통령의 대법관 증원안을 일컬어 "불필요하고 무익하며 절대적으로 위험한 헌법원칙의 포기행위"라고 비판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을 막아선 또 다른 축은 사법부 내부의 진보 세력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존경한 진보의 아이콘 브랜다이스 대법관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뉴딜정책의 지지자였지만 단기적 정책 승리보다 사법부 독립을 지켰다. 그것이 진보의 더 큰 가치임을 알았다. 결국 코트 패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5년 한국의 집권여당도 대법관 수를 두 배로 늘리려 한다. 88년 전 미국 여당이 진화한 절대 권력의 유혹이 지금 한국에선 활활 타오른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분은 국민경제 회복이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의 명분은 무엇일까. 임기 중 12명을 증원해 총 22명의 대법관을 자기손으로 임명하겠다는 민주당의 안은 대통령 개인의 사법적 방탄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의 4심제로 불리는 재판소원까지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의구심은 확신이 된다.
2025년 한국 법사위는 어떠한가. 판사 출신 추미애 위원장은 삼권분립 수호는커녕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하는 돌격대다. 88년 전 민주당 버튼 휠러 상원의원은 코트 패킹에 대해 "독재자의 손에 쥐어질 무기"라며 자당 대통령의 폭주를 비판했다. 한국 민주당엔 그런 용기를 가진 의원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 대법원에 어른은 어디 있는가. 특히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무죄 의견을 내 추앙 받고 있는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역사의 부름에 답해야 한다. 그들의 메시지만이 여당의 정치화 프레임을 뚫고 국민에게 도달할 수 있다. 일선 판사도 '권력자'의 사법부 장악 시도에 맞서 '사법 파동'을 일으켰던 선배의 결기를 본받아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코트 패킹은 입법부와 사법부 내 '용기 있는 좌파'의 저항으로 좌절됐다. 그들은 독재자가 되려는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보다 민주주의 원칙을 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우위"라며 입법부 권한을 주장한다. 하지만 선출 권력이 모든 것을 통제하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닌 다수의 독재다. 한국에는 이 파국을 막아설 '용기 있는 좌파'가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그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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